29일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해머던지기 결선에서 81m24를 던져 첫 금메달을 획득한 무로후시 고지(37)는 아버지인 무로후시 시게노부 이야기만 나오면 늘 쑥스러워 한다. 그는 "아버지는 부상 등 온갖 힘든 상황을 이겨내고 아시안게임에서 5연패를 해냈었다"며 "나도 아버지처럼 오랫동안 정상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할 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의 아버지 시게노부는 1970년부터 1986년까지 같은 종목에서 아시안게임 5연패 및 일본선수권대회 12연패를 달성한 '원조 철인'. 무로후시가 자만하지 않고 더욱 성실히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버지라는 '커다란 산'이 늘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힘이 됐지만 해이해진 마음을 때리는 채찍이기도 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부전자전의 새 역사가 마침내 대구스타디움에서 펼쳐졌다.
자신은 물론 현장에서 아들의 금메달 획득을 생생히 지켜보던 아버지 등 부자(父子)는 경기 뒤 얼싸안으며 포효했다. 이번 대구 대회에서 일본의 첫 금메달 소식이 전해지자, 관중석 한 켠에 자리 잡은 일본 응원단은 물론 열도도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안방에서 '남의 잔치'만을 지켜봐야 하는 한국으로선 마냥 부러울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해머던지기는 '유럽의 전유물'이었다. 세계 제패를 꿈꿨던 아버지 시게노부는 루마니아 창던지기 대표 출신인 세라피나 모리츠와 결혼했다. 무로후시를 낳아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아들에게 믿고 맡겼다.
어머니를 닮아 외모가 서양인에 가까운 무로후시는 키 187㎝, 몸무게 99㎏으로 당당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인한 체력 등이 강점이다. 특히 악력이 탁월하다. 유럽에 비해 체격조건과 기술 등이 전혀 뒤질 게 없었던 무로후시는 80m를 밥 먹듯 넘겼고 2003년 6월 84m86까지 던졌다. 무로후시가 이때 작성한 기록은 8년째 아시아기록으로 남아 있다.
올해까지 일본선수권 17연패를 달성해 아버지를 뛰어 넘었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무대까지 석권하면서 가문을 빛내게 됐다. 2001년 에드먼턴 세계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무로후시는 2003년 파리 대회에서는 동메달을 따냈다. 8년이 흘러 도전한 이번 대회에서 마침내 세계선수권대회 첫 금메달을 품에 안고 감격의 밤을 보냈다.
무로후시는 사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아시아 투척 선수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실력이 아닌 운이었다. 무로후시는 당시 올림픽에서 2위에 그쳤으나 헝가리의 아드리안 아누시가 약물 검사에서 적발돼 메달을 박탈당하면서 금메달을 승계했다. 이번에는 분명한 실력으로 경쟁자를 따돌리고 얻은 금메달이라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은메달을 차지한 크리스티안 파르시(헝가리ㆍ81m18)와는 불과 6㎝ 차이였다.
대구=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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