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높이뛰기 선수 중에서 지진아에 속했다. 경기에 나가면 학교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도 꼴찌는 늘 내 몫이었다. 비록 실력은 없었지만 지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었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포스베리 기법'이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 남자높이뛰기 금메달리스트 딕 포스베리(64ㆍ미국)가 대구를 방문했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참관하기 위해서다. 포스베리는 앞서 한국을 세 번 방문했으나 대구는 처음이다. 29일 오전 대구 스타디움 인근 아디다스 미디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연 포스베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른바 포스베리 기법을 창안한 사연과 배경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포스베리 기법은 1963년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이듬해 포스베리의 도약 장면을 찍은 사진이 세상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됐다. 신문에 게재된 사진을 본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한 신문은 '세상에서 가장 여유로운 자세의 높이뛰기(World's Laziest High Jumper)'라고 캡션(사진설명)을 붙이기도 했다. 이를 본 기자가 포스베리 기법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본격 소개됐다. 다음은 포스베리와 일문 일답.
-하늘을 바라보고 누운 듯한 자세로 바를 뛰어넘는 포스베리 기법를 창안하게 된 계기는?
"고교생이던 16세(1963년)에 처음으로 시도했다. 처음에는 다른 선수들처럼 '가위뛰기'(두 다리를 가위처럼 벌리며 바를 넘는 것)를 선호했지만 어느 순간 실력이 늘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하고 부딪치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 만의 방법이 만들어졌다."
-상상하기 힘든 혁명적인 도약기법으로 높이뛰기 역사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을지 정말 몰랐다. 나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챔피언은 고사하고 올림픽 출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노력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다. 뭘 하든지 나의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혼자서 만든 것 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었나?
"100% 내가 만든 작품이다. 가위뛰기 기법으로는 경쟁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지만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해서 기법이 완성됐다."
-높이뛰기 선수로 본인을 평가한다면?
"올림픽 금메달을 땄지만 선수로서 탁월한 편은 아니다. 내 이름을 딴 포스베리 기법을 만든 사람으로서 세상이 나를 알아준다고 생각한다. 당시엔 나도 포스베리 기법의 장점을 잘 몰랐다. 특히 나 보다 나은 선수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나의 장점은 지기 싫어하고 이기기 위해 뭐든지 하려고 하는데 있다."
-높이뛰기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10~11살에 운동을 시작했다.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 미식축구, 농구, 육상 등 여러 운동을 거쳤다. 높이뛰기는 '웨스턴롤'이라는 기법이 있었는데 그것을 기본동작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포스베리 기법을 만들고 나서 멕시코 올림픽때까지 5년 동안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꺼렸나?
"전혀 아니다. 그때만해도 이 기법은 검증되지 않았고 여전히 개발 중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경쟁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한국 높이뛰기가 수년간 매우 저조한 편이다. 충고를 하자면
"우선 좋은 코치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체계적인 프로그램 하에서 집중적인 훈련을 해야 한다. 지구력 위주의 훈련이 아니라 빠르게 바에 다가간 뒤 순식간에 높이로 전환하는 순발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선수 스스로가 높이뛰기를 사랑하고 즐겨야 한다."
대구=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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