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선 의원들에게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민심이나 바람이라는 '정답' 대신 선거구도라는 '오답'이 돌아오곤 한다. 물론 선거의 전체 흐름은 민심에 좌우되지만, 비슷한 성향의 후보가 난립하면 다른 성향의 후보가 당선된다는 선거구도의 가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지금 문제되는 곽노현 교육감과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의 후보단일화, 그 과정에서의 돈 거래도 구도 때문이었다. 지난해 6ㆍ2 지방선거 때 서울시교육감 후보들 중 보수는 6명인 반면 진보는 단일화 덕에 곽노현 후보 1명이었다.
■ 당시 보수진영도 단일화 노력을 하긴 했다. 지방선거를 25일 앞둔 5월6일, 보수단체인 바른교육국민연합은 '반(反)전교조 교육감후보 선출대회'를 열고 '여론조사 50%, 선거인단 투표 50%'의 경선을 통해 이원희 전 교총회장을 단일후보로 선출했다. 그러나 경선 탈락자 중 일부는 승복하지 않았고 일부는 아예 경선에 불참, 보수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무산됐다. 진보진영은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주경복, 이인규 후보의 단일화 무산으로 보수의 공정택 후보에 근소하게 진 경험 때문에 집요하게 단일화를 시도, 막판 성사시켰다.
■ 다양한 후보 단일화 중 가장 파장이 큰 경우는 역시 대선후보 단일화다. 대표적 사례는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연합으로 첫 여야 정권교체를 낳았고, 2002년 민주당 노무현, 통합21 정몽준 후보간 단일화도 막판 정 후보의 파기 선언이 있었지만 판세를 뒤흔들었다. 반대로 민주화 바람이 거셌던 1987년 대선에서는 YS(김영삼), DJ의 분열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36.6%라는 낮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밖에 63년 5대 대선에서는 국민의당 허정 후보가 사퇴했음에도 민정당 윤보선 후보가 공화당 박정희 후보에게 15만 표 차이로 패했다.
■ 후보 단일화는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정치행위가 아니고, 내각제를 채택하는 유럽에서도 연정이나 정파간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이루어진다. 최근 프랑스 '68혁명'의 주역인 녹색당의 다니엘 콩방디가 내년 대선에서 우파의 집권을 막기 위해 사회당과의 연대를 공언한 것도 일종의 후보 단일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연대나 후보 단일화에서 돈이 오가면 명분을 잃는 법. 1989년 동해 재선거에서 통일민주당이 다른 야당 후보를 매수, 사퇴시킨 사건 이후 곽 교육감과 박 교수의 돈 거래 의혹이 가장 충격적인 추문이어서 입맛이 씁쓸하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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