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일감 몰아주기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유의해야 한다"(금융감독원)
"실태 조사를 했지만 위법성 판단이 어려워 무혐의 결정을 했다"(공정거래위원회)
대기업 그룹이 계열 금융회사에 퇴직연금을 대거 몰아주는 관행을 두고 금감원과 공정위가 미묘한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금감원은 현장 검사를 통해 제재 등 강력 조치에 나선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주무당국인 공정위는 한 발 빼는 양상이다.
퇴직연금 계열사 물량 독점 심각
퇴직연금 시장에서 재벌 계열 금융회사들의 물량 독점 현상은 오래 전부터 지적돼 온 사안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2009년 말 49개 사업자 중 45위에 불과했던 HMC투자증권이 올해 초 모회사인 현대차의 퇴직연금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단숨에 6위로 수직 상승했다. 2009년 48위에 그쳤던 하이투자증권이 상반기 16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린 것도 모기업인 현대중공업이 물량을 몰아준 덕이었다.
이들뿐이 아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화재, 삼성물산, 삼성SDS, 삼성중공업, 제일기획 등에서 3조원이 넘는 퇴직연금을 유치했다. 삼성화재도 삼성생명, 삼성SDI, 제일모직 등으로부터 4,200억여원의 퇴직연금을 맡았다. 동부생명ㆍ동부화재(동부그룹), 롯데손해보험(롯데그룹), 한화손해보험(한화그룹)도 대동소이하다.
업계 내에서도 불만이 팽배하다.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퇴직금을 퇴직연금 형태로 사외(社外)에 예치토록 법으로 정한 건 근로자의 수급권을 보장하고 강화하려는 취지"라며 "계열사에 퇴직금을 맡기는 건 이 조항을 형식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금융회사에 계열사 퇴직연금 몰아주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건 사업자를 선정할 때 가입자 이익은 뒷전이라는 얘기"라고 꼬집었다.
금감원·공정위 시각차
이에 따라 금감원은 9, 10월 두 달간 전체 퇴직연금 사업자를 대상으로 현장검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이미 금감원은 사전 서면조사를 마친 상태로, 중점 검사 대상까지 추려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퇴직연금 도입 과정에서 근로자 동의 등 절차가 적절했는지도 들여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권혁세 금감원장은 19일 보험사 사장단 간담회에서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만큼 계열사와 거래할 때 불필요한 비난이나 오해를 유발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경쟁당국인 공정위는 올해 초 "부당 지원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 관계자는 "실태조사를 했지만 위법성 판단이 어려워 결론적으로 무혐의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논리는 두 가지다. ▦지원 행위가 성립하려면 지원을 받은 쪽이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해야 하는데, 금융회사들 간 제한 금리 수준이나 운용 수수료 등이 모두 비슷해 그럴 수 없었던 데다 ▦50곳이 넘는 사업자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퇴직연금 시장에서 독과점에 이를 정도로 매출 비중이 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금감원의 검사 결과에 따라선 두 기관이 첨예하게 대립할 공산도 없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들이 포함돼 있어 금융감독당국이 검사하는 것일 뿐"이라면서도 "계열 금융회사 예치 행위 자체가 위법은 아니기 때문에 계약 자체는 문제 삼을 수 없지만 절차상 문제가 있었는지는 면밀히 살필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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