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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사랑을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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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영의 詩로 여는 아침] 사랑을 지키다

입력
2011.08.2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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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을 들고 커다랗고 짙은 수박을 들고붉은 물이 가득 든 초록 수박을 들고

삶보다 무거운 수박을 들고 땡볕 아래 걸었네오래 걸었네 뜨거운 길을 걸었네

짙고 푸른 껍질을 쪼개면 시원할까그 붉은 물은 달고 시원할까

멀고 먼 수박 껍질 속의 세계를 향해 걸었네

던져버릴 수 없어 떨어뜨릴 수도 없어둥글고 커다란 수박은 깨져버릴 테니까짙고 푸르지만 수박의 껍질은 연약하고내 팔은 가늘고 등은 굽었다

터벅터벅 걸었네멀고 먼 길 끝이 기억나지 않는 노란 길을달콤하고 붉고 무거운 그대와아!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 위로

목이 마르지 않았네 눈물이 흘렀네 멀고 먼지워지고 말 꿈에서

● 튼튼할 때는 몰랐는데 몸이 약해진 후에 아주 힘들게 느껴지는 일들이 몇 가지 있어요. '수박 사오기'도 그 중 하나입니다. 싱싱한 과일을 파는 좋은 과일가게가 집에서 좀 멀어요. 얼마나 달고 시원할까 입맛 다시며 샀다가 들고 오는 내내 후회합니다. 팔은 끊어질 것 같고 쨍쨍한 햇빛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요. 이거 버릴 수도 없고 언덕이라도 오를라치면 제일 크고 좋아 보이는 놈을 골라온 제 자신이 밉살스러워질 지경입니다. 식구도 많지 않은데 이걸 언제 다 먹겠다고 욕심을 부렸을까요.

투덜거리다 보니 사랑의 감정과 비슷한 과일이로군요. 달콤하고 붉고 무거운 그대를 들고 땡볕 속을 아직도 한참 가야 한다니… 과연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의 영혼이 많이 약해졌나 봐요. 자신있게 약속할 수는 없지만 애는 써보겠다는 듯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입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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