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북쪽 기슭의 제주시 한라산수목원. 아열대에서 한대 식물까지 한라산 일대에 분포하는 1,100여종의 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살아있는 자연학습장이다. 전시 식물만 많은 게 아니다. 한란, 풍란, 삼백초, 죽절초 등 멸종위기 야생식물 23종에 대한 연구와 증식사업도 한창이다. 1993년 문을 연 이 수목원의 요즘 걱정거리는 '기후변화'다. 제주도는 최남단인데다 섬 주변에 난류가 흘러 어느 곳보다 빠르게 아열대화가 진행되는 곳이다. 제주의 평균기온은 10년마다 0.11℃씩 올라가고 있다. 한라산 생태도 이 영향을 받아 특히 고산지대 식물들에게 적신호가 켜졌다.
24일 찾은 이 수목원에선 한라산 고산식물인 시로미의 종복원 사업이 한창이었다. 시로미는 포도처럼 열매가 탐스러운 고산식물로 민간에서 식용이나 약용으로 두루 쓰인다. 제주에선'불로초'로 불린다. 해발 1,400㎙ 이상의 아고산 지대에 사는 주극식물(극지방에만 사는 식물)인데 2만년 전 빙하기 때부터 존재한 살아있는 화석과 같은 식물이다. 고정군(47) 한라산수목원 수목시험과장은 "10~20년 전만 해도 400㎙ 정도만 올라가도 등산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1,700㎙ 이상에서나 겨우 관찰될 정도"라고 말했다.
온난화는 식물상뿐 아니라 해수면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제주의 해수면은 1970년부터 2007년까지 22.57㎝나 상승했다. 회암층으로 이뤄진 관광지인 제주 서남쪽의 용머리 해안에는 1987년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만조 때도 바닷물에 잠기는 일이 없었지만 요즘은 하루 8시간 이상 잠긴다. 서귀포시가 2년 전 이 산책로를 70cm나 높였는데도 산책로가 물에 잠겨 출입금지 시간이 부쩍 늘었다.
내년 9월 6~15일 제주에서는 세계적인 환경회의인 세계자연보전총회(WWC)가 열린다. 의제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보전으로, 제주가 보여주는 기후변화의 대응 방안이 집중 논의될 전망이다. 김종천 WCC 조직위 사무처장은 "내년 제주 WWC에서는 기후변화로 위기에 처한 지구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주는 연구들이 발표돼 세계 환경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범들이 깊이 있게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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