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아니 한국 국민에게 감사합니다. 저에게 주는 돈이 결국 한국 국민의 것이라는 사실 잘 알아요. 이 상을 한국 국민에게 드리고 싶어요."
제5회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CINDI 2011) 폐막식이 열린 22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의 한 극장. 아시아경쟁부문 블루카멜레온상을 받은 스리랑카의 산지와 푸시파쿠마라(34) 감독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의 어눌한 말투는 장내에 웃음 파도를 일으켰지만 물기 어린 말은 이내 숙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푸시파쿠마라 감독은 한국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지난해 중앙대 영화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국어 교육과정을 거쳐 9월 정규과정에 들어간다. 신분은 학생이지만 삶의 궤적과 영화 이력은 만만치 않다. 스리랑카에서 방송 아나운서와 프로듀서, 신문 기자로 일했던 그는 "기존 매체로는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에 2007년 뒤늦게 영화에 뛰어들었다.
이번 수상작인 '플라잉 피쉬'는 그의 첫 장편영화로, 올해 로테르담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한국영화 '무산일기' 등과 대상인 타이거상을 다퉜다. 데뷔작으로 세계 최대 독립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CINDI 2011'에서 해외 저명 평론가와 저널리스트들이 수여한 블루카멜레온상(상금 2,000만원)을 거머쥐었으니 출발선상부터 재능을 인정 받은 셈이다. 그는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 배우 예지원 등 국내외 유명 영화인들이 주는 레드카멜레온상의 2등상에 해당하는 특별언급상을 받기도 했다.
푸시파쿠마라 감독은 2007년 문화관광부의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10개월간 전북 전주에 머물며 영화제작 과정을 공부했다. 2009년엔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필름아카데미를 수료했다. 지금은 국립국제교육원의 정부초청 장학생으로 수학하고 있으니 한국이 발굴하고 육성하고 있는 스리랑카의 영화 신성인 셈이다.
"한국과의 인연은 장학금 욕심 때문에 맺어졌지만" 그는 한국영화 애호가다. "한국영화를 공부하면서 한국에 오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고 했다. 그의 진한 한국영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 그는 레드카멜레온상 특별언급상을 받을 때 예지원이 시상을 하자 "영화를 보고 '누나'를 무척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상까지 주시다니…"라며 감격했다. 예지원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푸시파쿠마라 감독이 '선생님' 하며 인가하길래 '그냥 누나라 부르세요' 했더니 정말 그렇게 부른다"고 숨은 일화를 전해 웃음을 불렀다.
푸시파쿠마라 감독은 "할리우드와 발리우드, 한국만이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며 한국영화를 호평했다. 그는 "장선우 박광수 감독이 1980년대 등장하며 새로운 경향을 만들어냈고, 임권택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임상수 홍상수 김기덕 감독이 이런 경향을 이어 받았다"면서 "이들 감독들이 한국 사회가 무엇을 겪고 있는지 관찰하고 반영하고 있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플라잉 피쉬'는 독립국을 세우려는 타밀족 반군과 이들을 진압하려는 스리랑카 정부군의 대치 속에서 조금씩 무너져가는 한 시골 마을 공동체를 그렸다. 정부군 병사에게 농락 당하는 마을의 여자들, 정부군 병사에게 배신 당한 딸의 모습에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중년 남자, 반군의 재정 지원 협박에 고뇌하는 가장, 젊은 남자와 정분이 난 어머니를 살해하는 소년의 사연 등이 얽히며 스리랑카 현대사가 빚어낸 비극을 담담하면서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전한다. 푸시파쿠마라 감독은 "내가 모두 목격한 내용들이다. 지금은 전쟁이 끝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전쟁의 공포와 폭력에 대한 혐오 속에 살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아름답게 포장된 영화로 사람들이 꿈꾸게 하고 싶지 않다"며 "꿈은 자면서 꾸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영화 속 소년처럼 저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어머니를 두 번이나 살해하려 했어요. 제 머리 속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다음 영화도 어쩔 수 없이 제 인생에 대한 영화가 될 거예요. 죽을 때까지, 천천히,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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