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에서 스포일러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지만, 김선재(40)씨의 첫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 (문학과지성사 발행)는 다르다. 스토리의 반전으로 승부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촘촘한 심리 묘사와 탄탄한 서사가 주는 결말의 충격은 꽤나 묵직하다. 현대인의 불안한 일상을 파헤치는 이야기 솜씨에다 그 못지 않는 문장력도 인상적이다. 그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단편 '21세기 소년'을 보자. 문틈에서 기어 나오는 밥풀을 닮은 애벌레에 대한 묘사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열한 살 소년 '나'의 독백으로 꾸며진다. 며칠 전 엄마는 "당분간 방해하지마. 아주 중요한 일을 해야 하거든"이라며 방에 틀어박혔고, 나는 그 사이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영화를 보고 다른 사람들에겐 엄마는 외출중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아파트 안에 유폐되고자 하는 소년의 심리가 세밀하게 이어지는데, 실은 자살한 엄마의 죽음을 부인하는 심리임이 결말에서 밝혀진다. '21세기 소년'이란 제목에서 보듯 지금 젊은이들이 자기만의 내면 세계로 움츠려 드는 자폐적 세대라는 전언이 깔려 있다.
첫머리에 수록된 '모텔 제인 오스틴'도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설정이 돋보인다. 가난한 언더그라운드 밴드 멤버인 '나'는 버스에서 자다 깬 뒤 손에 이상한 쪽지가 쥐어져 있는 것을 본다. '3.12. 모텔 제인 오스틴 1207. 저녁8. 부디.' 나는 음란한 상상을 하다 그 쪽지를 버렸으나 '부디'란 말이 걸려 그 모텔을 찾아간다.
모두 9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은 만만찮은 신인 작가의 탄생을 알린다. 간결하면서도 나직한 톤의 문장이지만, 적재적소의 시적 비유와 미세한 감정 흐름을 짚어내는 밀도 높은 심리 묘사로 시종 긴장을 잃지 않는다. 아내 '안네'에게 무능력자로 찍혀 시달리는 책 세일즈맨 '나'가 연인 '안나'로부터 위로를 얻는 내용을 담은 '독서의 취향' 등에선 동음이의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2006년 실천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한 작가는 2007년 시인으로도 등단했고 조만간 시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다채로운 문학적 재능을 과시중인 신인 작가의 향후 행로를 주목할 만하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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