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와 총소리의 음파가 달라 선수들이 출발신호로 받아들이는데 혼선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어떻게 그런 기막힌 발상을 하게 됐는지 원…”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첫 날 첫 경기로 열린 여자 마라톤이 이중 출발신호로 대혼란을 빚었다. 27일 오전 9시 대구시내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앞 도로. 50여명의 마라토너들이 출발총성을 기다리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때마침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내에 있는 종이 타종되자 선수들은 출발신호가 울려 퍼진 줄 알고 10여m 앞을 달려나갔다. 하지만 경기진행요원들이 급히 이들을 가로막고 나섰다. 심판의 출발 총성이 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인즉 심판의 출발총성과 동시에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범일 대구시장, 에비 호프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부회장 등이 종을 울려 출발신호로 삼을 계획이었다는 것. 그러나 종소리가 먼저 터져 총성이 함께 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발걸음이 엉킨 선수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곧이어 발생했다. 선수들이 미처 출발선으로 되돌아오기 전에 심판의 출발 총성이 울린 것이다. 이에 따라 이미 출발선으로 돌아왔던 선수들은 그 소리에 달리기 시작했고, 일부는 출발선으로 돌아오던 도중 황급히 몸을 되돌려 달려야 했다. 다행히 충돌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던 선수들끼리 엉켜 넘어지기라도 하면 부상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의 한 관계자는 “음질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소리로 출발신호로 삼으려 했다는 자체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발상이다. 같은 총소리도 쏘는 사람이 호흡이 맞지 않으면 다르게 들린다”며 혀를 찼다.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는 대구 특유의 고온 다습한 기온에서 마라톤 경기를 하는 만큼 30km이후 지점에 살수대를 설치했다. 더위에 지친 선수들이 살수대를 통과하면서 열기를 식히라는 의미다. 살수대에 설치된 물뿌리개에선 보기만 해도 시원스레 물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살수대 직전 수 미터 전방에 대형버스가 주차돼 선수들의 진로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던 선수들은 단 한 명도 살수대를 통과하지 않았다.
마라톤 경기 규정엔 선수들이 달리는 주로(走路)엔 어떤 방해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나 이 버스는 명백히 선수들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당시 방송화면을 지켜본 외국기자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분위기였다.
골인지점에선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결승선을 통과한 일부 선수들은 탈진한 채 도로에 주저앉으며 도움을 요청했다. 중국선수 한 명은 구토를 하며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을 부축한 의료 진행요원들은 모두 남자들뿐이었다. 이들 진행요원들은 지쳐 쓰러져 있는 여성 마라토너들을 그대로 안아서 들어올리는 민망한 모습을 수 차례 연출했다. 당시 방송화면은 이 같은 장면을 여과없이 노출했다. 여성으로서 자칫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육상경기연맹 고위 관계자는 “골인 지점에 구급용 간이침대가 있었지만 햇볕에 노출돼 있어 누우면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며 “진행요원들이 탈진한 선수들을 ?똑汰?선수들이 뜨거움을 참지 못한 채 벌떡 일어서는 등 조직위가 선수들을 배려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여자 마라톤 경기라는 점에서 미리 여성 진행요원을 배치했어야 했고, 시간 여유도 충분했음에도 준비하지 못한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며 씁쓸해 했다.
대구=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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