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실내공기, 불쾌한 음식물 냄새와 뿌연 담배 연기. 게임에 대한 편견은 대부분 이런 칙칙한 PC방에서부터 출발한다. 일반인들에게 '게임 하면 연상되는 단어는?'이란 질문을 던진다면 십중팔구 '도박'이나 '중독'이란 답이 나올 것이다.
게임에 대한 이미지가 이러니, 게이머에 대한 첫 인상도 좋을 수는 없다. 특히 게임에 익숙하지도 않고, 자녀들 때문에 시선도 곱지 않은 기성세대들에게 게이머는 무슨 갬블러(도박꾼)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게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프로게이머의 세계는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우선 그들은 다른 프로스포츠처럼 분명 '선수'다. 프로게이머가 되기 까지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고, 항상 성적으로 평가 받는다. 승승장구하는 억대 연봉의 스타도 있고, 슬럼프에 빠져 도태되는 선수도 있다.
게임은 이제 e스포츠다. 테란과 저그, 프로토스 등 세 종족의 영토확장 전개스토리로 전개되는 스타크래프트는 프로축구나 프로야구처럼 리그제로 운영된다. 게임이 있는 날엔 수천명 관객이 모이고, 유투브를 통해 전세계 생중계되기도 한다. 연간 부가가치만 4조7,000억원에 달한다.
프로게이머들은 과연 누구일까. 그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세계 최초로 창단된 프로게임단이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국내 스타크래프트 리그 단체전(10개팀)에서 2연패를 달성한 KT 롤스터의 하루 일과를 따라가 봤다.
전략과 전술
"우리가 아무래도 테란과 프로토스 쪽에서 2번 카드가 약한 것 같은데, 지난 번 단체전 리그에서 위험했었던 적도 있고…."
"상대 팀에게서 먼저 주도권을 빼앗으려면 저그에서 선봉에 나설 1번 카드를 빨리 키우는 것도 시급해 보입니다."
진지했다. 2010~11 정규시즌이 끝난 터라, 흐트러질 법도 했지만 선수들의 얼굴에서 그런 기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서울 서초동 동아타워 3층 KT 롤스터 합숙소 오후 2시. 짧은 휴가를 마치고 올라온 선수들은 수석코치와 함께 자연스럽게 회의실로 모여, 곧 바로 지난 시즌 분석에 들어갔다. 강도경 KT 롤스터 코치는 "지난 시즌에 어려웠던 경기를 중심으로 자체 스크린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는 스타크래프트는 눈과 손의 스피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두뇌 회전이 빨라야 한다. 상대 전략에 따라, 빠르게 자신의 공격과 수비 진영을 재정비 해야 하기 때문. 이영호(18) 선수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보고 숨어 있는 의도를 얼마나 빨리 알아내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며 "해마다 달라지는 맵(전쟁터)을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영호 선수는 현재 국내 랭킹 1위. 스물도 안된 나이에 지난 시즌 약 5억원을 벌었다.
스타크래프트는 매년 다른 지형의 8~9개 다른 형태의 맵이 제시되면서 경기가 진행된다.
실제로 롤스터는 지난해와 올해 결승전(7세트)에서 맵의 특성에 따라 상대팀을 철저히 분석, 핵심 선수들을 4세트 후반에 기용하는 전략 구사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운동선수보다 더 강하게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은 법. 이들의 하루 일과는 평균 14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훈련 스케줄로 짜여져 있다.
다른 운동선수와 다른 점은 기상 시간이 좀 늦다는 점. 프로게이머들은 보통 오전 10시쯤 일어난다. 그러나 게을러서 그런 건 아니다. 대회시간(평일 오후 6시, 주말 오후 1시)에 생체리듬을 맞추기 위해서다. 강 코치는 "평일 게임이 오후 늦게 시작되는데 선수들의 기상이 너무 빠르다 보면 게임 시간에 맞춰 컨디션 조절에 실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침 식사(10~11시)후 이들은 몸풀기에 들어간다. 컴퓨터 게임인 만큼 주로 손과 손목을 푼다. 이어 ▦오후 3시까지 ▦잠시 쉬었다가 4시부터 8시까지 ▦그리고 다시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하루 3차례에 걸쳐 맵 파악, 전략ㆍ전술연구, 체력단련, 개인훈련 등을 반복한다. 한 선수는 "시간이 없어 이성 교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일단 시즌이 시작되면 짧은 외출 조차 어렵다. 어떤 프로경기도 우리만큼 훈련 양과 강도가 세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단관리도 철저하다. 특정 영양소가 부족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 인스턴트 식품이나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고 채소 생선 과일 등 비타민 및 단백질이 많이 함유된 음식이 주로 제공된다. 경기 직전에는 체력 비축을 위해 닭백숙이나 갈비 등 보양식도 나온다. 최만규 KT 롤스터 게임단 사무국장은 "게임이 몇 시간씩 계속되기 때문에 두뇌 싸움인 동시에 체력싸움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는 게 답답하지는 않을까. 이에 대한 답은 명쾌했다. "우리는 프로잖아요. 과정은 너무도 힘들지만 돈과 명예, 그리고 무엇보다 승리의 짜릿함은 그 무엇과도 비길 수 없어요."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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