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는 생물이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함바(건설현장 식당) 비리 수사는 운(運)에 운이 더해져 성공한 드라마틱한 수사였다."
경찰 최고위층과 대통령 측근들을 한꺼번에 잡아들였다는 점에서 올 상반기 검찰수사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함바 비리 사건에 대한 검찰 고위인사의 평가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 등 경찰 최고 수뇌부의 치부가 드러나면서 경찰 조직에 큰 충격을 줬고,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현 정부 들어 승승장구하던 최영 전 강원랜드 사장과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도 금품수수 혐의로 법정에 섰다. 화려한 성과만 보면 처음부터 수사가 물 흐르듯 착착 진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수사 초기만 해도 단서는 설익은 첩보와 금품 공여자의 진술밖에 없었다. 하지만 치밀한 수사기법과 운이 더해져 잇따라 대어를 낚았다. 수사팀과 사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수사과정을 재구성했다.
지난해 여름 서울동부지검에 흥미진진한 첩보가 입수됐다. 거물 브로커 유상봉에 관한 내용이었다. 공사현장에서 대형 건설사 사장에게 수천만원을 주고 함바 영업권을 따냈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함바라는 말이 생소해 검찰의 관심을 끌었지만 어찌 보면 단순 금품수수 사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유씨가 강 전 청장 등 경찰 고위관계자 및 정부 고위인사와 친분이 깊다는 이야기가 검찰 레이더망에 걸리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유씨가 돈을 전달한 기록이 메모돼 있는 수첩까지 확보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운은 유씨 검거 때부터 따랐다. 유씨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휴대폰을 꺼놓고 운전기사와 함께 잠적했다. 즐겨 타던 본인의 BMW 차량을 사용하지 않아 검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집요했다. 유씨가 휴대폰을 끄기 직전에 렌터카 회사와 여러 차례 통화한 것을 찾아낸 것. 유씨의 렌터카 차량번호가 금세 파악됐다. 렌터카에 장착된 위치추적장치(GPS)를 통해 검찰은 유씨의 동선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확인할 수 있었다. 유씨는 검찰 추적을 따돌리려고 자신의 차를 놔두고 렌터카를 이용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추적장치를 부착하고 도망 다니는 꼴이 된 것이다.
유씨의 진술을 끌어내는 데도 운이 작용했다. 유씨는 쉽게 검거됐지만 금품 제공 사실을 자백하지 않으면 수사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뇌물 사건에서 공여자의 진술은 결정적 증거로 작용하기 때문에 검찰도 유씨의 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유씨의 입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검찰이 각종 증거를 들이대며 설득하거나 압박할 필요도 없었다. 폐쇄공포증을 갖고 있었던 유씨는 좁은 감방에 수감돼 있는 것을 못 견뎌 했고, 오히려 조사실을 더 편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결국 수감생활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서는 검찰에 자발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씨가 예순이 넘는 고령이라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기도 했지만, 뜻밖에 기억력이 비상해 세세한 부분까지 자세히 말했다. 유씨는 돈을 전달하기 전 약속장소 근방의 현금인출기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어 유씨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유씨가 특정일자에 특정장소에서 누군가에게 돈을 전달했다고 진술하면 검찰은 그 장소 부근의 현금인출기 출금내역을 확인하고 비교하기만 하면 됐다. 금액과 날짜가 거의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때마침 다른 검찰청에서 터져 나온 사건도 수사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 유씨 입에서 금품 수수자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지만 당사자들은 대부분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길범 전 청장의 경우 유씨는 2,500만원을 줬다고 진술했지만 이 전 청장은 부인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광주지검 순천지청에서 강평길 전 여수해양경찰서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는데 800만원을 인사청탁 명목으로 이 전 청장에게 전달한 사실이 확인됐다. 다른 검찰청 수사에서까지 이름이 거론되자 이 전 청장은 부담감을 느낀 듯 마음을 바꾸고 공소사실을 법정에서 모두 인정했다. 당시 순천지청 사건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검찰은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갈 뻔했다.
장수만 전 방위사업청장을 기소할 때도 운이 따랐다.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장 전 청장은 보관 중이던 현금 5,000만원과 상품권 1,300만원을 세무사로 일하던 대구의 고교동창에게 맡겼는데 때마침 이 세무사가 다른 수사로 구속되면서 현금과 상품권의 출처가 드러난 것이다. 이 중 일부를 장 전 청장이 유씨로부터 받은 것이 확인돼 검찰 수사는 탄력을 받게 됐다. 최고의 은닉 장소로 지방을 선택했는데 오히려 덫이 되고 만 것이다.
검찰은 강 전 청장 등 경찰 출신 간부 6명을 재판에 넘겼지만 실제로 유씨로부터 금걋?받은 경찰관은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너무 많아 누구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고, 검찰이 수사 편의상 일정 직급, 일정 금액 이상으로 기준을 정해 진술을 받았다고 한다. 유씨 주변 인사들도 유씨의 성격과 사업특성상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했다. 특히 해운대 개발로 함바 사업이 번성했던 부산지역 경찰 간부들은 유씨 돈을 많이 받았다는 게 업계에서는 정설로 통했다. 유씨의 측근은 "재판과정에서 현직 경찰들이 상관으로 모셨던 경찰 간부들의 증인으로 거의 안 나오는 이유를 아느냐"며 "혹시 법정에서 유씨의 폭로로 자신들의 금품수수 사실까지 드러날까 두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고인들을 두둔하는 증인이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검찰의 운은 재판과정에서도 이어진 셈이다.
강 전 청장은 한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임상규 전 순천대 총장을 왜 조사하지 않느냐고 수사팀에 항의한 적이 있다고 한다. 기소된 사람 중에 뇌물수수 금액이 가장 많아 자신이 마치 함바 사건의 몸통처럼 비치고 있다는 불만을 표시한 것이다. 검찰은 임 전 총장의 경우 유씨와의 금품거래가 빈번해 별도로 살펴보기 위해 장기간 내사를 해왔는데 뜻하지 않게 자살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검찰 일각에선 "차라리 수사 초기 다른 인사들과 함께 임 전 총장이 검찰 조사를 받았다면 그가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이 부분에선 검찰도 운이 안 따랐던 셈이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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