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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촌 명물 대오서점 반세기 넘게 운영 권오남씨, 한 달 전에 팔려고 내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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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촌 명물 대오서점 반세기 넘게 운영 권오남씨, 한 달 전에 팔려고 내놓아

입력
2011.08.26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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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이 걷던 골목, 화가 이중섭이 살던 집, 세종대왕 생가 터… 유서 깊은 동네의 대명사가 된 서울 서촌(西村) 골목 한 쪽엔 60년 넘은 책방도 있다. '대오서점'이다. 지번으로는 종로구 누하동 33. 서촌은 종로구 효자ㆍ필운동 등 15개 동을 아우르는 인왕산 동쪽 동네다.

'대오서점'은 옛 상점의 전형이다. 유리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7㎡(약 2평) 남짓한 대문간에 빛바랜 책들이 가득하다. 500원짜리 만화책부터 5,000원짜리 소설책, 20년 전 문학잡지부터 참고서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문턱을 넘으면 서점 주인 권오남 할머니(81)가 사는 한옥 마당이 바로 나온다.

권 할머니는 21세 때인 1951년 6ㆍ25전쟁의 와중에 당시 '성광당 서림'을 운영하던 남편(조대식ㆍ97년 작고)과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서점 안주인이 됐다. 남편은 결혼 후 대로변에서 하던 서점을 지금의 장소로 옮겨 아내와 자신 이름 가운데 글자를 따 '대오서점'이라고 이름 붙였다. 다행히 장사가 잘 돼 2남 4녀를 모두 대학에 보내고 손자ㆍ손녀까지 10명 봤으니 할머니한텐 서점만큼 효자가 없다. "애들 키우고 시부모 뒷바라지,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정작 책은 못 봤어. 그래도 서경보 스님 글은 좋아해서 많이 읽었지."

그는 남편이 세상을 뜨자 한 단골손님한테 대부분의 책을 '그냥' 넘겼다. 그리고 남은 책들은 대문간이나 집 곳곳에 쌓아 놓았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서점 일을 사실상 접고 나니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이다. "00책이 있느냐"며 전화를 거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은 대학생들도 있고, 건축을 전공한다는 어떤 학생은 한옥을 연구한다며 들어와 며칠씩 살기도 했다.

"어떤 아가씨들은 우리 집 사다리, 의자, 먼지털이개, 서점 간판까지 자기한테 팔라고도 해. 오래된 게 너무 좋다고." 권 할머니의 설명이다. 실제로 대오서점에선 '읽기 위해서' 책을 사는 사람보단 '기념'으로 책을 사가는 사람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요즘은 오후 2시만 넘으면 근처 공원으로 게이트볼을 하러 가야 해 가게 문을 닫는다. 95년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취미 삼아 시작한 게 이젠 '효자동 클럽'의 선수가 됐다. 20년 전 퇴행성관절염으로 무릎 수술을 한 뒤 특별히 아픈 곳이 없는 것도 다 게이트볼 덕분이라고 귀띔했다.

"나이드니 몸 건강하고 마음 편히 사는 게 최고"라는 권 할머니에게도 최근 근심이 하나 생겼다. 한 식구처럼 왕래하는 정든 동네 사람들을 떠나 아파트에서 살게 될 일이다.

그는 고민 끝에 한 달 전 대오서점을 내 놨다. "평생 '납작 집'에서 살았으니 높은 곳으로 이사 갈까 해. 겨울에 화장실 다니다가 넘어져 다치면 자식들한테도 폐 끼치는 거야. 서점이 팔려야 할텐데…"

현재 이 골목에 남아 있는 한옥집은 이곳이 유일하다. 서울 한 가운데 '납작 집' 대오서점을 볼 날도 많이 남지 않은 것 같다.

글ㆍ사진=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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