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울산을 대표하는 과일은 배다. 예나 지금이나 울산배 하면 크고 맛있기로 으뜸이다. 추석 한가위 무렵 출하되는 울산배의 품종은 '신고'(新高)인데 당도가 높다. 가까이에 배 밭이 많아 해마다 배를 구입해 차례 상에 올리고 고마운 분들께 선물로 보냈는데 어제 들린 배 밭의 사정은 예년과 많이 달랐다.
매년 한가위 아래 한 해 생산량의 25%정도를 출하했는데 올해는 그 절반 정도에 그칠 것 같다고 한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올라간다. 올핸 15kg짜리 한 상자에 10만 원쯤 할 것 같다. 지난 해 가격과 비교하면 거의 배(倍) 수준이다. 이제 배도 '금(金)배'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다.
배 가격을 올린 주범은 쉬지 않고 비만 뿌려댄 여름 날씨다. 여름이 여름다워야 가을 과일이 제 맛을 내는데 올 가을에 배는 물론 사과까지 이른바 국민과일이 줄줄이 '금'자를 달 것이다. 그런 실정이니 출하를 하는 과수원이나 구매하는 소비자나 다 같이 얼굴이 어둡다.
신고는 상온에서 보관이 잘 되는 품종이어서 한가위 무렵에 구입해놓으면 오랫동안 시원한 맛을 즐겼는데. 그래도 마지막 뜨거운 여름 햇살에 기대를 걸어보는데 또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니! '마지막 과실을 익게 해 주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달라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기도가 더욱 절실해진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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