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개표 무산으로 한나라당 내부의 계파 갈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친이계 일부에서 '박근혜 책임론'을 제기하자, 친박계는 "상의도 없이 사고를 쳐놓고 이제 와서 우리보고 뒤처리를 하라는 말이냐"며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친이계 신지호 의원은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투표 전날 각자 알아서 판단하라고 하면서 김을 빼버린 것은 무책임했다"며 "야당의 투표 거부에 대해 한마디 지적도 하지 않은 것은 피아 구분을 하지 않는 것이란 얘기가 있다"고 박 전 대표를 직접 겨냥했다. 친이계 강승규 의원도 "서울시 각 당원협의회 별로 박 전 대표의 지원을 요청했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안타깝다"며 "박 전 대표께서 주민투표와 일정 거리를 둔 것이 당과 서울시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는 국민들의 판단을 받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친박계 이한구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선거 후보자나 정책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선거 과정에서 어려워지면 '설거지하라'는 식으로 책임지라는 것은 잘못됐다"며 "행동을 안 한 것도 책임져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이 사안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스스로 결정할 사항이지 중앙 무대에서 입김을 넣을 사항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친박계 현기환 의원도 "급식 문제를 갖고 누가 주민투표를 하라고 했느냐"면서 "시장직을 건 것도 오 시장 자신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현 의원은 이어 "무슨 일만 생기면 박 전 대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정치적 도의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당내에선 오 시장의 조기 사퇴로 10월 보궐선거가 실시될 경우 박 전 대표의 대선 스케줄이 수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ㆍ대선의 전초전 격인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와중에 대선 행보를 하는 것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표의 본격적인 대선 행보 개시 시기를 9~10월쯤으로 보고 있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10월 보궐선거가 치러질 경우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보궐선거가 실시될 경우 선거를 지원할지 여부도 박 전 대표로선 고민스런 부분이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당의 요청을 무작정 뿌리치기도 힘들고, 반대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가 지원에 나서고도 선거에서 패할 경우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어쨌든 박 전 대표는 여권의 주민투표 패배로 인해 불편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오세훈 발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바로 박 전 대표"라고 말했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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