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공헌 철학을 담아라" 금융 상품 잇달아 출시
은행들이 착해지고 있다. 사회공헌 및 친환경 사업, 지역개발을 지원하는가 하면 소외 이웃들에게 기부도 하는 착한 상품들을 속속 내놓고 있다. 아직은 정부정책과 시류를 따라가거나 작은 규모에 비슷한 상품들이 주를 이루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노릇이다.
시작은 미미하나 가치를 나누는 쌈짓돈이 모이고 모이면 차츰 세상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착한 은행으로 거듭나려는 노력들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더 높은 곳을 향하라는 격려다. 고객들도 돈을 불리는 금융상품을 통해 얼마든지 환경을 생각하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착한 상품이 두드러진 분야는 역시 환경이다. 국책 은행답게 기업은행의 환경관련 상품들이 가장 돋보인다. 정부의 녹색성장산업 육성에 호응해 종류도 많을뿐더러 구성도 튼실하다.
녹색기업대출은 기술보증기금의 기술평가등급 인증서를 받으면 신용분석을 생략하는 등 대출절차가 줄어든다. 녹색인증기업에게는 탄소경영 방법을 무료 컨설팅 해준다. 대출금리는 지점장이 금리를 감면해주는 것에 더해 추가로 1%까지 깎아준다.
녹색부동산대출은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을 받은 부동산이나 친환경건축물 인증을 받은 부동산을 담보로 내걸면 등급에 따라 금리를 내려준다. 중소기업에겐 대출금액의 10% 내에서 최대 1억원까지 추가 신용대출을 해준다.
물고기(대출)만 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컨설팅)도 가르쳐 준다. 기후변화와 온실가스 규제에 대응하고, 녹색성장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업계 최초로 녹색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이를 통해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은 발생 가능한 손실을 미리 살펴볼 수 있고 잠재적 위험관리뿐 아니라 새로운 사업 기회까지 노릴 수 있다.
환경에 초점을 맞춘 카드도 대거 선보였다. 에너지 사용을 10% 이상 줄이거나 대중교통 이용금액에 따라 에코머니를 적립해주는가 하면 대중교통 할인 혜택도 담았다. 기프트카드는 흙 속에서 완전 분해되는 천연소재를 이용한 재질로 만들었다.
우리은행은 저탄소녹색통장의 수익금 50%를 서울시의 저탄소 관련 사업에 기부하고, 승용차요일제나 탄소마일리지 제도에 참여하는 고객에겐 수수료를 100% 면제해 준다. 자전거 이용 고객에게 우대 금리를 적용하는 상품도 있다.
어려운 이웃을 십시일반 돕는 상품도 많이 나와 있다. 고객이 특정 상품에 가입하면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일정액을 적립해 각계각층을 지원하는 기부금으로 쓰고, 고객에겐 금리 우대 등의 혜택을 덤으로 얹어주는 방식이다.
하나은행은 김승유 회장의 기부철학을 토대로 다문화가정 돕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보의나눔 상품은 예금과 적금, 체크카드 등에 가입하면 계좌(건)당 100원의 기부금을 하나은행이 자체 출연해 다문화가정을 지원하는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에 기부한다. 만기에 해지금액을 바보의나눔에 모두 이체하겠다고 하면 연 0.5%의 이자를 더 준다.
NH농협의 法사랑통장은 예금잔액의 0.1%를 은행이 적립해 교통사고나 성폭력, 학교폭력 어린이 피해자 등 법적 소외계층을 지원한다. 고객은 수수료 면제와 포인트 지급, 금리 우대 등을 받는다. 채움같이의가치예적금은 누군가와 함께 가입하면 우대금리를 받는 식인데, 저소득 소외계층에게 연간 10억원의 도움을 주고 있다.
기업은행의 아픔나눔상품은 재난구호 기부금을 적립하는 공익 상품이다. 가입만 하면 은행이 기부금을 적립하는 방식이라, 고객 입장에선 자연재해 등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부담 없이 선행을 실천하는 셈이다.
특정 분야를 지원하는 공익상품도 있다. 국민은행은 만기지급 이자의 1%를 은행 부담으로 조성해 각각 한국영화산업발전과 지역개발을 후원하는 사회공헌상품을 운영 중이며, 신한은행은 수익금 일부를 국방헌금으로 기부하는 호국정기예금을 선보였다.
기업은행의 독도는우리땅통장은 표지와 속지에 각종 독도 정보를 담아 미니 독도교과서로도 손색이 없다. 11월까지 청소년이 3만원 이상 정기적금에 가입하면 최고 연 0.6%포인트까지 이자를 더 받을 수 있다. 2005년 첫 선을 보인 이래 6년간 1조4,000억원이 몰린 장수상품이다.
하나은행은 갑작스런 부도와 폐업 등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300만 자영업자를 위해 법률에 의해 압류가 금지된 노란우산공제를 단독으로 대행 판매한다.
전문가들은 착한 금융상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몇 가지 보완을 주문했다. 노형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이 자기 이익을 감축하면서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일부를 금융소비자에게 부담하도록 비쳐져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시스템보다는 최고경영자의 사회적 활동이나 분위기에 편승해 즉흥적이고 일회적으로 접근하는 게 아쉽다"면서 "순익의 몇 % 식의 원칙과 철학을 세우고 지속적인 관점에서 각자 장점을 살린 공익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 현지 봉사·기부·장학 사업… 해외시장 개척 교두보 역할
해외 진출은 국내 모든 기업들의 지상 과제다. 경제 성장으로 업체들 덩치가 커지면서 국내 영업만으론 체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도 예외는 아니다.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글로벌 은행으로 성장함에 따라 해외 진출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난 것도 이유다. 금융이 실물을 따라가는 건 자연스럽다.
은행들이 해외에서 돈을 벌어오면 '금리 장사만 한다'는 욕도 덜 먹고 애국까지 할 수 있다. 국내 금융소비자들에게 선심을 베풀 여력이 생기는 데다, 외화 조달로 국내 금융시장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국내 은행들이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은행들은 일단 아시아 지역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데, 이를 기반으로 유럽 등으로 시장을 넓혀간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원활한 해외 진출을 위해선 '현지화'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현지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소매금융에선 이질감 극복이 더 중요하며, 이때 '공익'이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미 은행들은 현지 법인이나 영업점, 거래 기업이 나가 있거나 진출 예정인 나라들 중심으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들을 벌이고 있다. 주로 봉사와 기부, 교육환경 개선, 소외계층 지원 등이다.
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대학생으로 구성된 해외봉사단 '라온아띠'(즐거운 친구들)를 스리랑카, 캄보디아 등 아시아 저개발 국가에 보내고 있다. 기업은행은 같은 해부터 빈곤국 아동 547명과 결연을 맺고 지금까지 7억원을 후원했다. 하나은행은 이달 초 재생 개인용컴퓨터(PC) 3,000여대를 인도네시아 등 저개발 국가에 전달했고, 신한은행은 캄보디아, 베트남 등을 중심으로 기반시설 건립, 장학사업 등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나눔 활동은 현지화의 핵심이다. 업계에서도 공익적 활동이 은행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은행 관계자는 "현지에서 영업 면허를 따려면 감독당국의 환심을 사야 하는데, 이때 우호적인 현지 여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사회공헌 활동은 은행 인지도와 함께 호감도를 높이는 데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은행 본연의 성격을 살린 사회공헌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금융중개인 만큼, 당장 상업적 이익이 적더라도 현지 중소기업 지원 등을 통해 실물 경제를 돕는 게 장기적으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같은 기관 서병호 연구위원은 "현지 학생이나 공무원 대상의 금융교육 같이 금융 전문성 을 살릴 수 있는 활동을 한다면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지 은행을 인수하려 할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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