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후 양국이 발표하는 내용들을 보면 서로 다른 곳에 방점이 찍혀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5일 두 정상이 회담에서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을 하루빨리 재개해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앞당겨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측이 24일 전한 "북한은 6자회담 진행 과정에서 핵물질 생산 및 핵실험의 잠정 중단(모라토리엄)을 시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러시아의 가스관을 북한을 경유해 남한까지 연결하는 사업에 대한 양국 발표문에서도 약간 차이가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가스를 비롯한 에너지와 철도를 연결하는 문제 등 경제협조 관계를 발전시킬 데 대한 일련의 의제들이 상정돼 공동인식이 이룩됐고 실무그룹들을 조직 운영하며 계속 협력해나가기로 했다"고 담담하게 보도했다. 이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전날 "가스 분야 협력에서 성과가 있었다"며 "우리는 관계 부처에 양자 협력의 구체적 조건을 마련할 수 있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한 것과 비교하면 구체성이 결여된 것이다. 당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을 빌어서 "북한도 한국과 러시아가 참여하는 이러한 3각 협력 실현에 관심을 갖고 있다"며 경과와 전망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양측의 엇박자는 24일 북러 정상회담 직후에 열린 만찬 회동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우리 두 나라 인민은 친선의 역사와 전통을 계속 심화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전통적 우호 관계 복원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반면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두 나라 사이의 협조를 실현하는 것은 적지 않은 경제적 결실을 포함해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게 될 것"이라며 "하부구조와 동력 분야의 거대한 계획을 실현하는 데서 러시아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이 참가하는 협조는 커다란 전망을 가지고 있다"고 역설했다. 회담이 끝난 뒤 만찬 석상에서 구체적 현안을 다시 강조한 것은 이례적 일이다. 더구나 김 위원장의 면전에서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한 것은 '외교적 결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외교 소식통은 이에 대해 "고차원적 정치 수사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북한이 옛 소련에 진 110억달러의 빚이 정상회담 안건으로 올려졌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보도하고 있는 반면 북한에선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이 같은 기류의 차이를 볼 때 동상이몽 속에 만난 두 정상이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다가 결국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군사협력이나 후계 보장 등에 대한 이면 합의를 해놓고 서로 발표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김 위원장이 탄 특별열차는 이날 중국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만저우리(滿洲里)역에서 목격됐다. 만주횡단철도(TMR) 노선으로 중국을 경유해 귀국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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