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반값 등록금 요구가 거세서 학생들 장학금을 확충하려고 하는데요. 후배들을 위해서 10만원만 기부해주세요."
재작년 성균관대를 졸업한 회사원 정모(28)씨가 최근 학교 총동창회로부터 받은 전화다. 정씨는 "학교 측 재단 전입금도 넉넉한데 왜 굳이 졸업생들한테 일괄적으로 10만원을 걷나 싶어 기부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총동창회는 그 후 세 차례나 더 전화를 걸어 "연말에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고, 고급 도자기 세트를 선물로 증정하겠다"며 기부를 종용했다.
정씨뿐 아니라 선후배들도 모두 똑같은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이 학교 졸업생 김모(29)씨는 "매년 3만원 정도의 동창회비에 기부금까지 강요하는 건 이중부담"이라며 "특히 반값 등록금 요구를 졸업생 장학금으로 무마하려는 꼼수라서 더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대학 동창회의 '횡포'는 이곳만이 아니다. 이화여대는 졸업식 때 총동창회에 5만원을 내고 졸업장을 받는 게 관행화해 있다. 지난 2월 이 학교를 졸업한 김모(24)씨는 "졸업장을 받으러 갔더니 학교 측에서 의사도 묻지 않고 5만원을 내라고 했다"며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설명 없이 취업도 못한 졸업생들에게 기부를 강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동창회의 무차별 강매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졸업생 인명부'. 서울의 모 사립대 졸업생 유모(30)씨는 몇 달 전 대학 동창회에서 인명부를 '그냥' 보내준다기에 받았는데 며칠 뒤 "인명부 값 10만원을 내라. 돈 안 낼 거면 학교로 다시 보내라"라고 해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도 했다. 연세대를 졸업한 강모(30)씨도 졸업 직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에 5만원을 주고 인명부를 샀지만 한 번도 들춰본 적이 없다. 이러다 보니 동문회나 동문 사칭 판매사기까지 생겨 고려대 교우회는 최근 동문 전체에게 '교우 사칭 상품 판매 주의'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고대 교우회에 따르면 동문들의 사칭 사기 관련 문의가 매년 10건 정도 들어온다. 동문이 아닌 사람이 동문이라 속여 잡지 구독 등을 부탁하는 방식이다.
서울 사립대의 한 사회학과 교수는 "어느 대학 할 것 없이 사실상 모든 대학이 '패거리 문화'를 바탕으로 동문들에게 기부를 강요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며 "기부 문화가 발달돼 동문들의 기부 역시 활성화된 외국 대학들과 달리 기부 문화가 덜 성숙한 국내의 대학은 사실상 기부를 강요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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