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100m경기는 화려하다 못해 번쩍인다. 섬광처럼 왔다가 찰나에 순위가 정해진다. 누가 먼저 골인했는지 육안으로 확인이 안돼 사진판독으로 0.001초까지 다퉈야 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에 반해 1만m 레이스는 100m와 여러모로 대척 점에 있다. 100m가 9초대에 메달색깔이 가려지지만 1만m는 30분 안팎을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트랙 종목 중에서 가장 오랜 시간 호흡을 끌고 가야 하는 경기가 1만m다. 마라톤을 제외한 최장거리가 1만m레이스다. 400m트랙을 정확히 25바퀴 돌아야 끝나는 싸움이다. 같은 코스를 반복해서 달려야 하니 지루하고 단조롭다. 하지만 케냐의 여자 '흑토마' 3인방 비비안 체루이요트(28), 샐리 킵예고(26), 리넷 마사이(22)는 거의 100m레이스를 펼치는 것처럼 장거리를 질주한다.
비비안 체루이요트
"뛰는 것 같지 않다." 체루이요트가 5,000m 레이스가 더 이상 성에 차지 않는다며 처음으로 1만m에 출전한다. 베를린 세계선수권 5,000m 금메달리스트 체루이요트는 나아가 런던 올림픽 마라톤에도 출사표를 던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렇다고 5,000m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체루이요트의 자신감은 벌써부터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는 최근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대구 세계선수권에서 5,000m와 1만m 모두 챔피언에 오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체루이요트는 대구 세계선수권 케냐 대표 선발전 1만m에서 내로라하는 경쟁자들을 제치고 1위로 골인해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입증했다. 체루이요트의 '입심'도 실력 못지않다. 그는"내 앞을 가로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다른 선수의 그림자를 밟지 않겠다"라며 당찬 각오를 밝혔다. 그는 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완벽하게 준비된 선수"라며 티루네시 디바바(26ㆍ에티오피아)의 5,000m 세계기록(14분11초15)도 대구에서 갈아치우겠다"고 말했다.
샐리 킵예고
말을 잘 한다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 하는 것은 아니다. 올 시즌 랭킹 1위라는 팩트(Fact)자체가 중요하다. 킵예고의 기록은 30분38초35. 당연히 대구 세계선수권 우승후보 0순위다. 킵예고는 케냐 선수지만 현재 미국 시민권을 신청한 상태다. 그러나 시민권을 획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최소 3년이다. 케냐의 딸 킵예고가 이 기간 동안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4번이나 케냐 대표선수를 희망했다. 전미 대학선수권에서 9연패를 이뤘지만 케냐대표 선발전에서는 4번이나 탈락했다. 그러나 올해 초 마침내 꿈에 그리던 케냐 대표팀에 선발됐다. 킵예고는 "운동 하다가 병원에 실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텍사스 공대에서 간호학을 전공, 간호사 자격을 취득한 그는 "은퇴 후 케냐 혹은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싶다"고 미래의 희망을 밝혔다.
리넷 마사이
여자 1만m레이스는 독재를 싫어한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두 대회 연속 챔피언 자리를 허용했다. 티루네시 디바바다. 디바바는 2005년 헬싱키와 2007년 오사카 세계선수권을 2연패했다. 디바바는 또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다. 그러나 그는 2009년 베를린대회는 부상으로 불참했다. 디펜딩 챔피언 마사이가 "디바바의 2연패에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최근 중국 신화통신과 인터뷰에서 "디바바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충분히 2연패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사이는 "케냐 팀은 매우 강하다. 모두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 팀이지만 적이기도 한 묘한 관계다"라고 덧붙였다. 마사이는 앞서 베이징올림픽에선 30분26초50로 골인, 4위에 그쳤지만 이는 당시 세계주니어 신기록이었다.
이들에 맞서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다 잡은 금메달을 놓친 멜카무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우승자인 메서렛 데파(28ㆍ에티오피아)가 케냐 3인방의 메달 퍼레이드를 두고 볼 수 없다며 벼르고 있다. 한편 이 부문 세계최고기록(29분31초78) 보유자는 중국의 왕쥔샤다.
여자 1만m레이스는 대회 첫날인 8월27일 오후 9시에 열린다.
대구=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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