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먹고, 똥 잘 누고, 할 일 있으면 행복한 거야."
좀 원색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젊은 시절 왠지 모를 고민에 빠져서 방황할 때 어르신들이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먹을 것 있고, 건강하고, 직업이 있다는 것인데, 이 정도만 해결되어 있으면 소박하나마 우리 삶에서 큰 걱정거리는 없다는 얘기다. 크게 출세하고 큰 돈을 버는 것은 상위 10% 정도의 행복이겠으나, 지금 우리 주변에는 먹는 것과 건강, 직업 등 최소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승자 독식의 무한 경쟁 상황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규모가 점점 커진 탓이다.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무상급식 논쟁도 먹는 문제다.'아이들 눈치 밥 먹지 않게 하자'는 것이 골자지만 얼마 되지 않는 급식비조차 부담스러워하는 계층이 상당수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또 우리 사회의 최하위 계층으로 전락한 노숙자들은 단 한 가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는 상태고, 정부는 이들을 구제할 근본적인 방안조차 내놓지 못한 채 서울역 등지로부터 격리하려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외국에 비해 건강보험이 잘 되어 있는 편이라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점점 의료 혜택에서 소외되고 의료비가 저소득층 가계의 파탄 요인으로 지적되는데다 건강보험 재정도 날로 악화하고 있어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할 일'이 없다는 것. 우선 청년 실업자들 문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적 위협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이 지났고 모든 정권이 청년실업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지만 정쟁에 골몰한 탓인지 여전히 해결 기미가 없다. 선진국이라는 영국에서 이유 없는 폭동이 발생해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사건도 청년실업과 무관치 않고 우리나라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더욱이 베이비붐 세대들이 조만간 은퇴를 시작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폭탄'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몇 년 후부터는 매월 몇만 명씩 총 700만 명 가까이가 직장을 떠나게 된다. 이 경우 10년 내에 청년실업과 노년실업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우리 사회를 혼돈으로 몰아넣을 수 밖에 없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수백 만명을 넘어가고, 은퇴한 아버지와 취직 못한 자녀가 계층 갈등을 일으키며 한 집에서 살아가는 심각한 상황이 오는 것이다.
최근 들어"삶이 더 고달프고 희망이 안 보인다"는 주변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 지인은 "은퇴는 가까워 오고 집안에 취직 못한 자식이 있다"며 한숨으로 답했다. 소득수준도 높아지고 경제도 큰 발전을 했는데도 '행복 지수'는 더 위축된 듯 하다. 답답한 마음에 펼쳐본 법정스님의 에 언뜻 답이 보인다.
"세상의 기업체나 정부 관료들은'무한 경쟁 시대다', '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등의 광고를 한다.…사람이 어떻게 무한히, 끝없이 경쟁만 할 수 있는가. 삼류도 있고 사류도 있다.…어떻게 일류만 존재하는가. 이런 극도의 이기주의를 우리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의 과제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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