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무상급식 투표에 '나쁜 투표 착한 거부'란 말이 나왔다. 투표 결과를 떠나 그 착하다가 앉은 자리가 제 자리가 아닌 것처럼 어색하게 보였다. 착하다는 말이 남용되고 오용되더니 상업 광고에서 정치의 구호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의 착하다의 뜻풀이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다.
물론 말이 사전 뜻대로 해석하고 뜻대로 쓰는 것은 아니지만, 착하다는 말은 착한 자리에 사용했으면 좋겠다. '착한 가격'이란 말도 그렇다. 나는 싼 가격을 봤지만 착한 가격은 보지 못했다. 싼 가격은 결코 착한 가격이 되지 못한다. 그건 누군가의 손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격에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래가 있는데 공정하지 못하면 착한 거래도 착한 소비도 될 수 없다. 소비자만 만족시킨다 해서 착한 가격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생산, 소비, 판매가 다 만족해야 착한 가격이라 할 수 있다. 이러다가 착한 정치, 착한 정당, 착한 권력, 착한 대통령으로 번져 나갈지 모르겠다.
착한 언론에 착한 방송까지 덩달아 가세할 것 같다. 시인으로 나는 착한 말을 가끔 쓴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은 착한 형용사는 사람 세상에는 없고 자연에는 있다.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는 착한 나무, 살과 뼈를 다 주는 물고기, 보상을 바라지 않는 착한 꽃들, 내가 만난 착한 것은 모두 말이 없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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