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했던 무상급식 주민투표 공방이 막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생각했던 이야기를 하련다. 오세훈 서울시장부터다.
먼저 이번 건이 꼭 주민투표에 부쳐 이 소란을 벌일 만한 일이었는지 묻고 싶다. 타협점은 없었느냐 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어떤 정책이든지 단계적 실시가 전면 시행보다 상대적으로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시의원 다수가 민주당, 시장이 한나라당 소속인 건 서울시민의 뜻이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 절묘하게 분할해놓은 민의가 거기 있다. 설사 방향이 옳더라도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 뒤엎으란 메시지는 아니다. 적법 절차라도 타협의 정치를 거부하는 것은 밀어붙이기 리더십의 연장선이다.
또 한가지 불만은 여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장직을 내건 정치적 속내다. 투표율 제고를 위한 고육책이라지만 그런 '순수성'으로 모든 상황이 설명되는 건 아니다. 야권에 정면으로 맞섰다는 이유로 오 시장은 '한나라당의 잔다르크' '보수의 전사(戰士)'란 이미지를 얻었다는 말도 있다. 2017년 대선을 그려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그는 줄곧 1위를 달린다.
자신이야 차차기 유력 대선주자가 될 수 있고, 내년에 당 대표까지 거머쥘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간 자신을 밀어준 당은 풍전등화 상태가 됐다. 벌써부터 한나라당은 서울을 잃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당내에서는 "시장 보궐선거에서 지면 혹시 새로운 시 지도부가 청계천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부실공사라고 주장할까 봐 보초라도 세워 놓아야 할 판"이란 자조가 나온다. 야권에서 펄쩍 뛸지 몰라도 요즘 여야 사정을 보면 이런 농담이 나돌 토양은 충분한 듯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여태껏 뭘 했는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중앙당과 상관없는 서울시당 문제라고 발을 뺐다가, 막판에 이르러서야 당력을 모으자고 소리 높였다. 하지만 실제 무슨 투표 독려 운동을 했는지 들은 적이 없다. 투표에 부칠 때, 시장 자리를 걸었을 때 제대로 만류하지 못했으면서도 투표일 끝까지 불구경하듯 했다.
야권은 그 사이 유세차량을 동원해 지하철역 부근을 휩쓸면서 투표 거부 운동을 하는 등 총력전을 폈다. 물론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선택하라는 투표에 '아무 것도 찍지 말라'는 주장은 또 무슨 억지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박근혜 전 대표는 당과 보수 진영의 애타는 목소리를 끝까지 외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서는 게 대선 레이스에 이로울 게 없어서다. 측근들은 대놓고 오 시장을 욕했다. 한 의원은 "오 시장 주장이 당론이냐. 이번 투표로 당이 곤란해질 게 분명하므로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자기가 뭔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느냐"고 비아냥댔다.
이 정도면 특유의 '오불관언(吾不關焉)' 정치와 거리가 멀다. 천막당사 시절 당을 위해 전국을 누비던 그 '절절한' 진정성은 어디로 갔는지 아쉽기 그지 없다. 오 시장의 독자 행동과 이런 사태를 막지 못한 당 지도부의 무기력한 대처, 박 전 대표 측의 이기적 행태가 어우러져 있는 게 한나라당의 모습이다.
그래도 한나라당에게 적잖은 국민은 선거 때마다 표를 준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사실상의 양당제 상황에서 한나라당을 찍을 수밖에 없는, 그 적잖은 국민이 불쌍하고 안쓰럽기만 하다.
염영남 정치부 차장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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