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을 위해 목숨을 거는 장부(丈夫)의 용기에 이국의 관객들도 전율했다.
동양평화의 큰 뜻을 품었기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할 수밖에 없었던 안중근의 인간적 고뇌를 담은 '장부가(Song of a Great Man)'로 대미를 장식한 주연배우 정성화가 무대 인사를 위해 다시 등장하자 1,500여 관객은 일제히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한국 토종 뮤지컬 '영웅'과 만난 첫 번째 뉴욕 관객의 반응이었다.
뮤지컬 '영웅'이 23일(현지시간) '히어로(Hero)'라는 제목으로 미국 뉴욕 링컨센터 내 데이비드 코크 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인 2009년에 국내에서 초연한 창작 뮤지컬이다.
링컨센터는 음악 연극 오페라 발레 등 다양한 장르의 극장을 한 곳에 모은 뉴욕 최대의 복합예술공간. 까다로운 대관 심사를 거쳐 '영웅'을 낙점한 데이비드 코크 극장은 주로 오페라와 발레를 올리는 공연장이다. 뉴욕 스테이트 극장으로 불리던 1997년 '영웅' 제작사 에이콤인터내셔날의 또 다른 뮤지컬 '명성황후'가 공연된 곳이기도 하다.
이날 버지니아주에서 발생한 규모 5.9 지진의 진동이 뉴욕까지 전해져 시 전체가 혼란에 빠졌지만, 뮤지컬 '영웅'을 향한 뉴욕시민의 뜨거운 관심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전체 2,550석 중 극장 측이 시야가 가려진다며 오픈하지 않은 꼭대기 2개 층을 제외한 1~3층 1,500석이 거의 찼다. 특히 반기문 사무총장을 비롯한 유엔 관계자 250여명이 초대를 받아 자리를 함께 했다. 반 총장은 공연 관람 후 리셉션에서 "할 수만 있다면 토니상 최우수작품상을 주고 싶다. 자유와 독립을 위해 헌신한 20세기 영웅 안중근의 메시지를 통해 인권과 자유, 가난과 질병 타파를 위해 싸우는 21세기 영웅이 세계 각지에서 탄생하길 바란다"는 축사를 하며 제작진을 격려했다.
영어자막이 붙는 한국어 공연인데다 현지 스태프와의 호흡이 아직 완벽하지 않은 탓에 기술적인 실수가 더러 있었지만 관객들은 1막부터 마음을 활짝 열었다. 실물 기차와 컴퓨터그래픽 영상, 가림막을 적절히 활용한 공연의 대표적인 볼거리인 하얼빈역 의거 장면에서는 숨을 죽였고, 안중근의 어머니 조 마리아가 부르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가 흐를 때는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관객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조이스 캐츠(74)씨는 "좋은 공연을 보여준 제작진에게 고맙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꼭 관람을 권하겠다"고 말했다. 조영자(68)씨는 "점수를 준다면 A+로도 부족하고 A+++를 주고 싶다.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지 공연 관계자들의 반응도 우호적이다. 아이작 로버트 허위츠 뉴욕뮤지컬시어터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은 "무대기술과 안무, 배우들의 수준이 높다"며 "서사가 뛰어난 점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과의 차별성으로 부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웅'의 연출자 겸 제작자인 윤호진 에이콤인터내셔날 대표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주변 반응에 굴하지 않고 250만달러(약 28억원)를 투자해 이번 뉴욕 공연을 성사시켰다. 기대 이상의 반응에 고무된 그는 "최근 브로드웨이는 알맹이 없이 자본력으로만 승부하는 작품이 홍수를 이뤄 울림이 있는 스토리를 발굴한다면 한국 제작사도 충분히 겨뤄볼 만하다"고 말했다. 주연배우 정성화도 "열광하는 관객에게서 한국 뮤지컬의 희망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영웅'의 뉴욕 공연은 9월 3일까지 14회 이어진다. 이후에는 국내 재공연이 준비돼 있다. 12월에는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내년 1월에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뉴욕=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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