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카다피는 없었다. 23일(현지시간) 시민군은 그의 관저가 있는 바브 알 아지지야를 손에 넣자마자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카다피와 일가는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무성한 추측이 뒤따랐다.
유력한 은신처로 꼽히던 바브 알 아지지야 요새가 텅 빈 것으로 드러나자 카다피가 지하 터널을 통해 외부로 도망쳤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바브 알 아지지야 지하에 만들어진 터널의 길이는 총 3,218㎞에 달한다"며 이렇게 추측보도했다. 알 자지라 방송은 이런 루머는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며 '이 터널이 사람이 아닌 차량이 다닐 정도다' '터널의 길이는 30㎞다'는 등의 소문이 양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관저를 빠져 나온 카다피는 고향인 시르테나 사막지역, 산악지대에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있다. 트리폴리 남쪽 약 650㎞에 있는 사막도시 사바에는 비행장을 포함한 군 기지가 남아있어 이곳도 가능한 은신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아직 카다피가 트리폴리에 머물고 있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아흐메드 바니 시민군 측 군대변인은 알 아리비야 TV에서 "카다피가 트리폴리 내 수많은 은신처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30여명의 외신기자가 머물고 있는 릭소스 호텔에 카다피가 숨어있다는 주장도 있다.
망명 시나리오도 여전히 나온다. 국제형사재판소(ICC) 협약의 미가입국인 베네수엘라나 쿠바, 카다피와 절친인 로버트 무가베가 이끄는 짐바브웨,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을 받아준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수단 등도 거론되고 있다고 CNN은 보도했다. 카다피가 이미 아내 소피아와 딸 아이야, 손자 손녀들을 유럽의 한 국가로 피신시켰다는 얘기도 있다.
종적은 감추었지만 카다피는 육성메시지를 통해 또 한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23일 바브 알 아지지야를 시민군에 내준 직후에도 "전술적 이동일 뿐"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는 한 라디오방송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으로부터 64차례에 걸친 폭격을 받은 후 이곳이 폐허로 변했기 때문에 전략적 이유로 철수했다"고 밝혔다고 친카다피 채널인 알 오루바TV가 23일 보도했다. 그는 또"나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신중하게 트리폴리를 잠행하고 있다. 트리폴리가 위험에 빠졌다고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카다피는 "모든 국민이 트리폴리에 나와서 반역자들을 쓸어버리라"고 결사항전을 독려했다. 무사 이브라힘 정부 대변인도 알 오루바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카다피는 수개월 또는 수년간 저항할 준비가 돼있다"며 "우리는 리비아를 화산의 용암으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은 "카다피는 잡힌 후에도 전술적 이동일 뿐이라고 말할 것"이라며 조롱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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