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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은행 프로젝트/ (상) 돈 장사만으로는 안 된다

입력
2011.08.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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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의 변신… 이자놀이 벗어나 공익 금융으로

올해 상반기 국내 은행들은 10조원에 육박하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미국과 유럽의 재정위기 등 대외 악재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대형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졌던 외환위기 때와는 달리, 이제 어지간한 대내외 충격에도 버틸만한 든든한 체력을 갖춘 셈이다.

하지만 마냥 박수를 칠 수만은 없다. 은행들이 거둬들인 수익의 80% 이상은 가만히 앉아서 벌어들인 이자 수익이다. 그러다 보니 고객들 상대로 돈 장사만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제는 불어난 덩치, 달라진 체력에 걸맞은 사회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많다. 돈 벌이에만 집착하지 말고 고객과 함께 하면서 경제의 밑거름이 되는 '착한 은행'으로의 탈바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3회에 걸쳐 은행들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보는 '착한 은행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편집자주

대부분의 기업은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박수를 받는다. 경영자의 경영 능력이 인정되고, 근로자들의 공헌도 높이 평가된다. 하지만 은행만큼은 예외다. 적자를 내면 경영을 못했다고 질타를 받지만, 그렇다고 막대한 흑자를 내도 칭찬은커녕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그렇다. 국내 18개 은행이 거둔 순익은 사상 최대인 9조9,000억원. 환란 이후 십 수년간 은행의 여신심사 시스템을 개선하고, 자산운용 능력을 키우며, 신용평가 능력을 강화한 덕이다. 은행 임직원들의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 참 잘했다"는 칭찬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은행 입장에선 억울할 만도 하다.

여기엔 은행 순익의 대부분을 예대마진, 즉 예금과 대출금리의 차이에 의존하는 국내 은행들의 특성에 원인이 있다. 국내 은행들 순익에서 이자수익 비중은 작년 기준 83.2%. 이자수익 비중이 50% 남짓인 글로벌 은행들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JP모건체이스의 경우 지난해 이자이익(50.8%)과 비이자이익(49.2%)의 비중이 거의 비슷했다. 글로벌 은행들 역시 금융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자수익이 기본적인 수익원이긴 해도, 그 밖의 다양한 수익모델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국내 은행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서민들 상대로 돈 장사한 것"이라는 비판을 면키 힘들다.

이젠 국내 은행들도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 이상 '돈 장사에만 집착하는 은행', '차가운 은행'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착한 은행', '따뜻한 은행'의 이미지 구축이 절실하다.

이미 은행 최고경영자(CEO)들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최근 "소나기 내릴 때 우산을 접는 은행이 되지 않겠다"고 했고,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도 "실물경제에 피해가 적도록 자금 공급을 원활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이 과도하게 수익을 낼 생각만 하면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하지 않는다"(한동우 신한금융 회장),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은 의사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이순우 우리은행장), "중소기업에 단 한 푼이라도 싼 자금을 많이 공급하는 게 기업은행의 역할"(조준희 기업은행장) 등 다른 CEO들의 생각도 대부분 비슷하다. 평상시에는 적극적으로 대출을 권유하다가, 막상 위기가 닥치면 급격히 대출을 회수하면서 기업이나 서민들의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과거의 영업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다. 정작 이익과 직결된 현실 앞에서는 실무진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압박에 일부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전면 중단한 게 대표적이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은행도 기업인만큼 손해를 보면서까지 영업을 할 수는 없다"면서도 "사회의 혈관 역할을 하는 은행이 막히면 사회 전체에 미치는 파장이 큰 만큼 긴 안목의 경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수익 다변화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이자수익 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고금리 장사에 대한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다. 수수료 비중을 높이고, 투자은행(IB) 역량을 키우며, 해외사업 비중을 높이는 등 다양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는 "예금금리를 늦게 올리면서 대출금리를 빨리 올리는 등 예대마진 확대에만 집착해선 곤란하다"며 "이젠 은행도 새로운 수익원 발굴을 통해 국내에 선진금융을 선보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사회공헌 활동도 중요하다. 다행히 최근 들어 은행들의 사회공헌활동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추세다. 신한금융은 2006년 금융지주사 중 처음으로 500억원 규모의 신한장학재단을 만들었고, 하나금융과 기업은행도 같은 해 하나금융공익재단과 IBK행복나눔재단을 각각 설립했다. KB금융도 5월 KB금융공익재단을 출범시켰으며,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올 하반기 200억원을 조성해 다문화가정지원재단을 설립키로 약속했다.

하지만 글로벌 은행들과 비교하면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금융회사가 생명과도 같은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사회공헌 등 공익적 활동을 늘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 "공익도 돈 된다"

돈 버는데 윤리와 공익을 따지는 건 한가한 얘기다. 투자의 미덕은 '불확실'을 가급적 지우고 '최대 이익'을 노리는 것이다. 돈 놀이에 익숙한 은행이 모를 리 없다. 이익보다 사회적 가치를 우선해봐야 숫제 머리만 아프고 돈으로 돈을 불리는 것만 못하다는 게 아직 상식으로 통한다.

유럽의 한 은행이 그 오랜 통념을 깨고 있다. 공익도 돈이 된다고 선포한다. 아니 실제 돈을 벌고 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 '이윤 증대'는 유일의 목적이 아닌 보너스로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것이다. 빈곤완화, 유기농업, 예술기획, 재생가능에너지, 지역개발 등이 이 은행의 투자목록이다. 돈을 대는 공익사업이 9,000개가 넘는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서유럽 곳곳에 지점을 거느린 트리오도스(Triodos)은행은 최근 유럽 금융계에 차랑차랑한 파문을 그려나가고 있다. 제아무리 대기업일지라도, 뒷배경이 특출하고 사업계획이 탄탄하더라도 환경이나 사회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판단이 들면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1980년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분기 손실을 기록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쓸고 간 2008년에도 수입이 25%나 급증했다.

트리오도스은행은 이름처럼 사회, 윤리, 경제라는 '세 갈래 길'(그리스어로 '트리 호도스')을 추구한다. 환경, 공정거래, 소액금융과 관련된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기준을 사업 평가에 적용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이익보다 가치를 우선하는 원칙이 위험한 발상 같지만, 놀랍게도 트리오도스은행의 사업은 날로 번창하고 실적도 빼어나다. 남한테만 강요하는 게 아니라 태양열에너지 건물을 사용하고 썩는 재질의 신용카드를 개발하는 등 이모저모 솔선수범하고 있다.

트리오도스은행의 자산은 2008년 5조8,000억원, 2009년 7조5,000억원, 지난해 8조7,000억원으로 꾸준한 성장세다. 지난해 순이익(178억원)은 2009년보다 20% 증가했다.

착한 은행의 꿈은 동참 은행들이 늘면서 차츰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트리오도스를 비롯한 전세계 11개 은행들의 연합체 '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개발을 지향하는 은행연합'(GABV)은 올해 3월 방글라데시에서 2020년까지 세계 인구 6분의 1인 10억명을 고객으로 유치하겠다는 공동목표를 밝혔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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