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이루어졌다. 9년 만에 이루어진 방문은 3차례에 걸친 중국 방문의 뒤를 이어, 북한이 본격적으로 '북방정책'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것이라 하겠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협력관계를 어느 정도 마무리한 뒤, 이번에는 러시아로 눈을 돌려 경제협력 및 정치, 안보 등 포괄적인 분야에서의 협력관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옛 북방정책 추구하는 북한
그간 북-중 관계의 밀착으로, 러시아는 북한 및 동북아시아 지역에 대한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러시아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극동지역의 자원 개발에 북한은 전략적 중요성을 띠고 있다. 최근 러시아가 가스, 에너지, 철도 등의 분야에서 남-북-러의 협력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이번의 북-러 정상회담에서 이들 분야가 중요 관심사가 될 것이라는 점은 김정일 위원장의 행적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부레야 수력발전소를 둘러보았는데,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그 동안 우리는 북-중 관계만을 눈여겨 보았을 뿐, 북-러관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러시아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6자회담 등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 등의 때문이었다.
또한 북한 역시 중국에 비해 러시아와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보여주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에 중국과의 협력이 밀접해지면서 북한으로서는 중국에의 과도한 의존에 불편을 느꼈을 것이며, 따라서 협력 다변화의 필요성때문에라도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추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과거 우리가 추구했던 '북방정책'을 오늘에 와서는 북한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김정일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의 즈음에 북한은 금강산 지구의 재산을 자신들의 법에 따라 처분할 것이며, 상주 인원도 추방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 동안 북한이 공언했던 대로 금강산 지구의 우리 재산에 대한 법적인 조치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 정부가 요구했던 금강산 관광을 위한 대화 재개를'조건부 수용'(현실적 거부)한 이후,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자 자신들의 선언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북한이 중국 등과 계획하고 있는 러시아, 중국, 남북한, 그리고 일본 등지를 잇는 관광 사업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당면해서는 이대로 금강산 관광사업을 방치하지 않고, 중국 등과의 협의를 통해 금강산 관광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우리로서는 북한의 이런 조치가 불편할 뿐 아니라, 못마땅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러시아 방문과 금강산 지구에 대한 행동의 개시는 결국 남북관계의 복원과 대화의 가능성이 그 만큼 더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북한에 대한 봉쇄와 압박 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한 지금의 상황에서 미국마저도 90만 달러 상당의 긴급지원에 나서고, 미군유해발굴을 위한 회담을 열기로 하면서 대화의 분위기를 살려나가고 있다. 자칫 우리만 외톨이가 되고 있지 않는지 우려된다.
대북정책 돌아보는 계기 삼아야
이 모든 상황의 밑바탕에는 결국 남북관계의 단절이 존재한다. 북한이 남쪽이 아니라 북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 이유도 그렇고, 금강산에 대한 재산 처분에 나서게 된 것도 결국은 한반도 문제를 우리의 손으로 풀지 못한 결과에서 연유한 것이다. 대북정책에서 원칙을 지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원칙은 무능과 감정적 만족으로만 머무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대북정책을 심각하게 돌아봐야 할 이유이다.
정영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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