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남서부 블랙힐스 산의 1,829㎙ 고지.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 조각으로 유명한 러시모어산이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과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등의 얼굴 새겨진 세계적 관광명소다.
그런데 조각상 위에 줄 한 가닥을 몸에 감은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목숨을 건 듯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들. 왜 이곳에서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청소 때문이다. 이들은 독일의 청소장비업체인 카처(KARCHER)의 직원들이다. 말 그대로 세계 최고의 청소전문가들이다.
카처는 세계 산업용 청소기의 60%이상을 점유한 1위 업체다. 하지만 청소기 생산보다는 청소 그 자체로 더 유명하다. 이들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1980년부터 지금까지 전세계 80여 곳에 달하는 문화 유산 및 랜드마크를 청소해주는 '클리닝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는데, 23일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청소도 예술이다
세계적 기념물이나 대형 건물치고 카처 직원들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곳은 별로 없다.
카처와 가장 인연이 깊은 곳은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예수상. 1931년 브라질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이 예수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끼가 끼고, 도시 먼지공해로 얼룩이 되면서 그야말로 만신창이였다.
카처는 1980년 이 예수상의 청소를 처음 맡았다. 고압력 세척기로 씻어내면 쉽게 끝날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렇게 할 경우 대리석이 손상될 수도 있었다. 예수상은 표면이 충격에 민감한 비누석(스테어타이트) 모자이크로 돼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카처의 청소전문가들은 오랜 회의 끝에 결국 세척력은 보장되면서도 섬세한 스팀청소를 선택했다. 카처는 이후 매 10년 단위로 예수상을 씻어오고 있다.
카처가 가장 오랫동안 청소한 곳은 1998년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의 콜로네이드다. 2만5,000㎡의 광장을 청소하는데 장장 9개월이 걸렸다.
미국 시애틀의 스페이스 니들는 야간 청소 때문에 더 힘들었다. 무려 180미터 높이의 건물을 청소하다 보니 세제와 오염물질이 사방으로 퍼질 수 있기 때문에, 밤 9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만 청소를 진행한 것이다. 밝은 대낮에 해도 힘든데, 깜깜한 밤에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높은 건물에 매달려 청소를 했으니, 힘은 몇 배나 힘들었다는 후문이다.
이집트 고대유적인 룩소르 신전 내 멤논 거상은 3,300년만에 처음으로 목욕을 했다. 2002년에 이 거상의 청소를 맡은 카처는 가장 오래된 인류유적의 손상을 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고, 결국 오랜 돌의 먼지를 제거함으로써 청소 뿐 아니라 추가 부식을 막는데도 기여했다.
이 밖에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독일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일본 도쿄의 니혼바시 다리 등 세계적 명소들이 대부분 카처의 손을 거쳤다.
이번엔 한국
카처가 우리나라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처는 테마형 사회공헌 '클리닝 캠페인' 대상국가로 이번에 한국을 선정했고, 25일부터 열흘 동안 남산 일대를 청소할 계획이다. 서울의 랜드마크인 남산 N서울타워와 팔각정 앞 계단, 드라마 삼순이 촬영 장소로 유명한 남산 도서관 계단 등을 세척하게 된다.
남산 N서울타워의 경우 1975년 완공 후 한번도 전문적으로 세척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카처의 청소가 끝나면 훨씬 깨끗한 모습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보인다.
카처는 이번 남산 세척에 앞서 복원전문가, 미술사학자 등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남산 N타워와 계단 등의 소재를 미리 파악하고 이에 맞는 청소 장비와 세제, 방법을 사전에 검토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다. 자칫 잘못하면 청소가 오히려 관광지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영권 카처 한국지사장은 "유명 문화 유산에 쌓인 동물의 배설물나 먼지 등을 제거하는 것은 단순히 청결의 문제가 아니라 소중한 문화유산의 보존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향후에도 청소 전도사로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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