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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여름과 가을 사이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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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길 위의 이야기] 여름과 가을 사이의 바다

입력
2011.08.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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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바다인 그 집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만조의 파도 소리에 잠을 깨고 간조의 파도 소리에 잠이 들던 집이었습니다. 바다와 나 사이엔 얇은 문풍지 한 장만이 횡격막처럼 놓여 있어 마당으로 바다가 밀려왔다 쓸려갈 때마다 영혼이 빠져나가는 아뜩한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바다의 일이 달과 태양이 지구를 잡아당기는 인력 때문이라 배웠지만 그보다 더 먼 곳에서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절대자의 손이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마루 끝에서 까치발로 서면 아스라이 수평선이 보이고 먼 바다로 왕래하는 선박이 보였습니다. 그 무렵 나는 돌아오는 것보다 떠나는 일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희망봉까지 바닷길을 찾고 저 먼 아프리카 대륙 케이프 반도 맨 끝을 돌아가는 삼등 항해사이고 싶었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밑줄 그으며 읽던 나는 그 마당에서 시작하는 열망의 바다를 향해 짐을 꾸렸습니다. 그러나 그땐 떠나는 것이 돌아오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것을 뜨거워서 몰랐습니다. 뜨겁다는 것, 차갑게 식기 위한 과정인 줄 몰랐습니다. 어느새 바다가 서늘해지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먼저 요란한 열기의 여름은 떠나가고 사유의 가을이 도착하고 있습니다. 그해 여름 떠나간 젊은 내가 낡은 여행 가방을 들고 가을 바다로 돌아오고 있을 것입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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