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에 집중호우가 끝나자 갑자기 가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소위 장마 뒤 폭염, 무더위라는 한반도 여름의 전형적인 패턴은 온데간데 없다. 더욱이 청명한 가을이 본격화하는 9월 초순에 또다시 많은 비가 예보돼 올 여름 날씨는 완전히 뒤죽박죽이 된 양상이다. 이러한 저온과 일조량 부족현상에 따라 과일과 쌀 등 농작물 흉작 우려로 당장 내달 12일 추석 차례상 준비에도 비상이 걸렸다.
23일 기상청에 따르면 장맛비와 집중호우로 점철됐던 8월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돈 날은 단 6일. 작년(16일)에 비하면 무려 열흘이나 줄어든 수치다. 서울의 낮 평균 최고 기온도 28.8도로 작년(30.9도)에 비해 2.1도나 낮았다. 강릉(29.4) 대전(29) 광주(29.9) 부산(29.1)도 작년에 30도를 넘긴 것에 비해 올해는 29도에 머물렀다. 더욱이 8월 일조량도 서울은 39.7시간으로 평년(111.6시간)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폭우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했던 남부지역도 대전 56시간, 광주는 62.6시간으로 평년(115, 126)에 비해 햇빛 나는 날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여름저온과 일조량 부족은 장마 집중호우 태풍 등 이름만 달리한 폭우가 줄기차게 쏟아졌고 이로 인해 지표면의 열기가 식은 탓이 크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최근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가을기운을 느끼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다 북태평양고기압이 일시적으로 남쪽으로 물러나고 난데없는 동풍이 불어 기온은 높지만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가을장마와 2차 집중호우 가능성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9월 들어 북태평양고기압 세력이 계속 자리잡고 있어 남서풍이 유입될 경우 대기불안정으로 인한 국지성 집중호우가 발생할 것"이라며 "9월 초순까지 평년보다 많은 강수량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9월 마저 가을비로 물들 경우 과일농사는 물론 쌀농사 마저 직격탄을 맞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창 낱알을 여물 시기에 일조량이 줄어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잦은 비로 추수가 예년보다 3, 4일 늦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올 추석이 지난해보다 일주일 이상 빨라 햅쌀을 제때 출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9월엔 날씨가 쨍쨍해야 벼가 제대로 생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8~9월의 사과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6.9%, 포도는 10.7% 줄어들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기상청 관계자는 "작황에 영향을 미치는 일조량 추이는 좀더 지켜봐야겠다"며 "본격적인 가을 날씨는 추석 이후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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