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영어대학에 재학 중인 민모(21)씨는 2학기 기숙사 입주를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고향이 경남 창원인 민씨의 학점은 4.5 만점에 3.9. 민씨는 "좀 괜찮다 싶은 학교 주변 자취방은 보통 보증금 1,000만~2,000만원에 월세 50만~60만원을 불러 기숙사 배정을 신청했었다"며 "다들 가격이 저렴한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하니 경쟁률이 높아져 떨어진 것 같다"고 울상을 지었다. 민씨는 결국 월 60만원짜리 하숙방에 들어갔다.
9월 개강을 앞둔 대학가에 '기숙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해마다 치솟는 등록금에다 전ㆍ월세 가격도 크게 올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대학생들이 기숙사로 몰리고 있는 것. 그러나 기숙사 정원은 한정돼 있다 보니 경쟁률만 높아지고 있다.
23일 한국외대에 따르면 지난해 여학생 기숙사 지원자의 경쟁률은 4.2대1이었지만 올해는 5대1로 올랐다. 한국외대 관계자는 "어차피 떨어질 거라고 생각해 지원조차 하지 않은 수도권 학생들까지 포함하면 경쟁률은 더 오를 것"이라며 "학과 성적과 거리를 점수로 환산해 기숙사 입주자를 정하는데 그렇다 보니 보통 4.5만점에 평점이 4.3은 되어야 안정권"이라고 밝혔다. 한 학기 기숙사비는 100만원 안팎이고, 이는 한 달 25만원 꼴이다. 기숙사는 학교 근처의 원룸과 비교하면 돈도 절약되는 데다 안전하기까지 해 인기가 많다.
다른 서울 시내 주요 대학 기숙사 경쟁률도 3대1을 넘나들었다. 한 대학 관계자는 "그나마 기숙사 방을 늘리고, 학점과 지역 제한을 두는 바람에 경쟁률이 이 정도지 실 수요를 따지면 10대1 가까이 치솟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숙사 배정을 받은 학생들의 학점 커트라인도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다.
서울대에선 기숙사인 관악사에 외국인 교환학생을 우선 배정하면서 방 배정에서 떨어진 지방 출신 학생들이 반발하는 일도 있었다. 예년의 경우 2학기 추가 배정자는 150~200명 안팎이었는데 올해는 50여명에 그친 것. 서울대 대학본부 측은 "2학기 외국인 교환학생이 지난해보다 80여명 늘어났는데 외국대학과의 교류협정상 교환학생에게 의무적으로 기숙사를 배정하게 돼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렇지 않아도 기숙사 방이 모자라는데 이런 이유로 우리 몫만 줄었다"며 울상이다.
결국 기숙사 배정에서 떨어진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싼 방을 찾아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가기도 한다. 고려대 정경대학 4학년 김모(27)씨는 "기숙사도 안 되고, 전세를 구하고 있는데 학교 근처는 너무 비싸 버스로 10~20분 거리까지 나가게 됐다"며 "비싼 등록금에다 월세까지 감당하기는 너무 벅차다"라고 토로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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