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자본을 활용해 사회기반(SOC)시설을 건설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민간투자사업이 존폐 위기에 놓였다. 정부가 일정 수입을 보장해주던 최소운영수입보장제(MRG)가 폐지되면서 민간투자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발 금융쇼크로 금융권의 참여 기피 현상까지 겹치면서 지역 숙원사업들이 줄줄이 무산되고 있다.
23일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진행 중인 민자 고속도로사업(20개) 중 70%(14개)가 지연되거나 무산될 위기에 있다. 예컨대 강원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제2영동고속도로(광주~원주) 사업의 경우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5월 착공 예정이었지만 건설경기 침체와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면서 금융권이 사업을 포기했다. 영천~상주, 제2외곽순환도로(인천~김포), 안양~성남간 고속도로 건설사업도 비슷한 상황이다.
충남 보령시는 대천해수욕장에 조성하려던 아쿠아리움 사업을 투자자가 없어 2년 만에 사업승인을 취소했고, 경기 용인도시개발공사가 4월 실시한 용인역북지구 도시개발 민간사업자 공모에도 신청자가 전혀 없었다. 전북 전주시는 민자로 추진하려던 전주종합경기장 이전 사업을 무기 연기했다. 올해 초 사업자 공모에 참여의사를 밝혔던 개발업체들이 저축은행 사태로 금융권 대출이 어려워지자 사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참여하겠다는 업체가 한 곳도 없어 입찰공고를 철회했다"고 말했다.
소규모 임대형 민자사업(BTL)도 금융권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올해 신규 발주가 한 건도 없을 정도로 급감했다. BTL 규모는 이 제도가 도입된 2005년 6조1,000억원에서 2007년 9조9,000억원으로 커졌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지난해 3조5,000억원으로 급감했다. BTL은 민간사업자가 모은 자금으로 시설을 완공해 정부 등에 소유권을 이전한 뒤 20~30년간 임대료를 받아 투자비를 회수하는 구조라 투자자 확보가 사업 성패의 관건이다.
민자사업 침체에는 정부의 MRG제도 폐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MRG란 정부가 민자사업의 운영수입을 일정 부분 보장해주는 제도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공공사업에서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고육책이었다. 하지만 운영수입 적자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고스란히 보조해주면서 재정적자가 커지자 민간제안사업은 2006년, 정부고시사업은 2009년에 이 제도가 폐지됐다.
이 때문에 민자사업 수익률이 과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5% 이하로 떨어지면서 금융권도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한 금융사 민자사업 담당자는 "MRG 폐지 이후 민자사업 수익률이 국공채 금리 수준으로 떨어져 투자자를 모으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건설업계에선 금융권의 민자사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MRG 재도입 ▦BTL사업종류 확대 ▦신용보증기금 역할 확대 ▦기준금리 적용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MRG를 과거처럼 순이익을 추정해 손익을 정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후이익 정산방식으로 바꿔 민간사업자와 정부가 손실을 공동 분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용석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투자의 경우 국가 잠재성장률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상당하기 때문에 민자사업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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