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의 석유 지배권이 재편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년을 끌어온 리비아 내전이 반카다피 시민군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440억배럴의 검은 황금을 둘러싼 국제 석유자본의 쟁탈전이 시작된 것이다.
국제사회는 민주화란 대의를 앞세워 리비아 군사작전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막대한 유전 개발권을 노린 경제적 이해가 더 컸다.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만 물러나면 40년 동안 지속된 리비아의 석유국유화 시스템도 해체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다국적 석유 기업들은 이미 2003년 이라크 전쟁을 통해 석유 시장을 장악한 경험이 있다.
잠재력만 놓고 보면 리비아 석유는 1순위에 꼽힐 만하다. 일일 생산량은 155만배럴로 전세계 수요의 2%에 불과하지만 매장량(440억배럴)은 8위를 자랑한다. 유황 성분이 적고 품질이 좋아 생산량의 80%가 수출 물량이다. 리비아가 천연자원의 보고인 아프리카와 중동, 중앙아시아를 잇는 연결고리라는 점에서 전략적 가치도 높다.
거대 석유자본이 이를 지나칠 리 없다. 초반 판세는 이탈리아가 치고 나가는 형국이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22일(현지시간) TV연설을 통해 "리비아의 석유 생산시설들을 만든 나라가 이탈리아"라며 "우리 석유기업 에니사가 머지않아 1위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리비아와 이탈리아는 과거 식민관계를 뒤로하고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리비아 석유의 최대 수입국이고, 에니사는 반정부 시위 전까지 전체 석유 채굴량의 14%를 리비아에서 생산했다. 이탈리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공습이 시작됐을 때에도 시칠리아섬 공군기지를 제공하며 시민군에 적극 협력했다.
NATO군 공습을 주도한 프랑스, 영국, 오스트리아의 석유 기업 역시 수혜 목록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이탈리아 에니사와 프랑스 토탈사가 리비아 내전의 최대 승자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아랍권 국가 중 가장 먼저 시민군 지지의사를 밝히고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은 카타르도 단순한 석유거래 중개자 역할에서 벗어나 직접 생산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러시아, 중국, 브라질은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 측 석유회사인 아고코의 압델잘릴 메이우프 대변인은 이날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과는 별 문제가 없으나 러시아, 중국, 브라질과는 일정한 정치적 이슈가 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이들 국가가 리비아 군사작전을 극렬 반대했기 때문에 석유 사업에서 배제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아람 셰군츠 러시아-리비아 사업위원회 위원장은 "우리는 리비아 시장을 완전히 잃었다"며 "NATO가 러시아 기업의 리비아 내 사업을 막을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중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긴 마찬가지. 올해 초까지 75개 중국 기업이 3만6,000명의 인력을 리비아에 상주시키며 진행해 온 50개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
관건은 리비아 석유 생산이 언제 정상화 하느냐다. 시민군이 장악한 동부 유전지대에서 생산하는 원유는 일일 평균 6만배럴로 내전 이전에 턱없이 못미친다. 쇼크리 가넴 전 리비아 석유장관은 "몇몇 유전시설은 수개월 내에 생산을 재개할 수 있지만 완전 정상화까지는 최소 1년 반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시설 복구기간이 길어지면, 리비아 석유에 거의 눈독을 들이지 않았던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내세워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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