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이상한 투표다. 여느 때 같으면 투표를 많이 하라고 독려하는 것이 상식이다. 투표야말로 직접 민주주의이고, 국민의 소중한 권리(참정권)가 아닌가. 그런데 오늘 실시되는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함부로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투표 참가가 곧 한쪽에 대한 지지를 권하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분명 정상은 아니다.
투표는 때론 최선의 선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차선이라도 선택해 '최악'을 막기 위해 투표를 하기도 한다. 다수결 원칙, 선택의 제한이 가진 맹점 때문이다. 통상 반대세력이나 야당이 더 적극적이다. 소수 유권자들의 선택과 의사가 전체를 지배하고, 다수가 그것에 복종해야 하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어떤 선택도 싫으면 기권보다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의 시민들처럼 백지투표로라도 의사표시를 해라. 그래야 상대가 경각심을 가진다.
무엇이 '나쁜 투표' 인가
그런데 서울시의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정반대다. 분명 자신들의 주장을 선택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장 서서 투표하지 말라고 외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권자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효가 된다. 단계적 무상급식이냐, 전면 무상급식이냐는 주민투표로 물을 사안이 아닌 것이 되고 만다.
결국 피장파장이 아닌가. 아니다. 서울시교육청과 야당은 주민투표에서 자신들의 안이 선택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얻어 전면 무상급식을 그대로 밀고 나갈 수 있다. 기권이 단순한 항의나 반대의 차원을 넘어 자기의지를 관철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 셈이다. 투표에 참가해 이겨도, 불참해 투표를 무효화시켜도 마찬가지인데 굳이 투표로 모험, 위험에 빠질 필요가 있나. 더구나 주민투표 발의 등 여러 정황상 투표로는 이길 확률이 적은데.
아마 둘 다 손해 보는 상황이라면 기꺼이 위험을 감수했을 것이다. 100원을 도박에 걸지 않으면 뺏고, 도박에 그 돈을 걸어서 따면 50%를 주겠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당연히 도박을 선택할 것이다. 반대로 똑같은 이익이 있다면 위험과 모험을 피한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딱 그렇다. 투표율 규정이 있기에 기를 쓰고 지지세력들의 투표 참가를 호소하기 보다는 위험도가 낮은 '기권'운동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나쁜 투표'이다. 이 전략에는 정책에 대한 설명과 비교, 비판은 더 이상 필요없다. 다만 좋은 투표냐, 나쁜 투표냐에 대한 선택만 있을 뿐이다. 만인 평등의 보편적 복지를 싫어하는 자와 좋아하는 자의 편가르기만 있을 뿐이다. 투표를 하면 보수가 되고, 거부하면 진보이다. 설령 야당과 서울시교육청이 주장하는 안에 찬성표를 던지더라도 '나쁜 사람'으로 취급될 판이다.
주민투표가 정책이 아닌 정치와 이념 대결의 장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여기에'나쁜 투표'에 위기를 느낀 오세훈 서울시장이 독불장군처럼 차기 대선불출마와 시장 직까지 걸면서 하나의 정책투표를 거대한 정치, 이념 대결의 도박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 놓고는 당신(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아무 것도 안 내놓고 이익만 챙기겠다는 것이냐. 승부를 벌이려면 당신도 비슷한 것을 걸어라, 그래야 도박이 성립되지 않느냐고 은근히 압박했다.
주민투표가 '도박' 인가
서울시 무상급식 투표는 '나쁜 투표'도, 정치적 도박판도 아니다. 시장의 신임을 묻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주민투표제는 그야말로 지방자치단체의 중요 정책사항을 주민이 직접 결정하는 제도이다. 사실 여야가 추진하려는 무상급식도 궁극적으로 같은 방향이다.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정당한 절차를 거친 투표와 비슷한 색깔의 정책까지도 선악으로 갈라버린다. 과거 자신이 주장하던 것을 단지 입장(여야)이 바뀌었다고 반대하면서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까지 서슴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정당한 절차와 제도도, 복지의 기준과 가치도 내 편, 네 편에 따라 멋대로 버리거나 규정해 버린다. 정치도, 학문도, 종교도, 언론도, 그리고 이제는 학교 급식현장에서까지. 우리사회의 골수병이다. 투표결과와 상관없이 그 병은 더 깊어질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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