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3년 8월22일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DC에서 행한 연설 끝 부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킹 목사는 당시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흑인차별을 고발하면서 "내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 받는 나라에 살았으면 하는 꿈이 있다"며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을 노래했다.
육상에서도 이 같은 노래를 부르는 이가 있다. 버나드 라갓(37ㆍ미국)이다. 현역 육상선수 중 최고령에 속하는 중장거리 스타인 라갓이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따낸 메달만 10개. 이중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거둔 금메달은 4개다. 그러나 올림픽에선 은메달과 동메달만 맛봤을 뿐이다. 라갓의 'I have a dream'은 곧 런던올림픽 금메달이다.
그에 앞서 라갓이 넘어야 할 무대가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다. 라갓이 23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 오후 늦게 달구벌에 안착했다. 라갓은 이번 대회 1,500m와 5,000m 두 부문에 출전한다. 육상 선수론 환갑을 넘어 진갑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라갓은 미국 장거리 육상의 '지존'이다. 그도 그럴 것이 라갓은 중장거리 7개 부문에 걸쳐 미국 챔피언에 올라있다.
미국은 올림픽과 세계육상선수권에서 100, 200m 챔피언 자리를 자메이카에 넘겨준 지 오래다. 하지만 라갓이 버티고 있는 장거리만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국으로선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젊은 피로 무장한 신예들이 새롭게 나타나지 않고 노장투혼으로 근근이 자리보전하기 때문이다.
라갓은 특히 지난달 22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모나코 다이아몬드리그 5,000m 레이스에서 12분53초60의 기록으로 2위로 골인했다. 이는 자신의 최고기록을 0.52초 앞 당긴 것으로 올 시즌 세계랭킹 2위에 해당한다.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라갓의 자기 기록경신은 고목에서 꽃이 피는 것과 같은 경우"라고 말했다.
미국 육상의 터줏대감 라갓은 그러나 아프리카 케냐 출신이다. 케냐의 유명 전사부족인 난디족의 후손인 라갓은 2005년 4월 미국 국적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라갓은 앞서 1999년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아메리카 드림을 일구기 시작했다. 워싱턴주립대 경영학과 학생 선수로 이름을 알린 라갓은 2004년 5월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당시 케냐는 이중국적을 불허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숨기고 같은 해 8월 아테네올림픽 케냐 대표로 출전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이듬해 4월 그는 미국으로 귀화했음을 '커밍아웃'했다. 라갓은 결국 이중국적 논란 끝에 올림픽 메달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IAAF는 그에게 2년간 세계육상선수권 출전 정지라는 경징계를 내렸다. 2007년 오사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직전, 자격을 회복한 라갓은 미국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1,500m와 5,000m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이중 1,500m 우승은 미국이 99년 만에 되찾은 금메달로 라갓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갓이 대구 세계선수권에서 만날 최대 경쟁자는 케네니사 베켈레(29ㆍ에티오피아)다. 라갓은 베켈레와 모두 9차례 맞붙어 3승6패로 뒤져 있다. 가장 뼈아픈 패배는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 5,000m다. 당시 결승선이 0.5m만 더 남았어도 금메달은 라갓의 몫이었을 정도로 박빙의 레이스였다. 전광판은 베켈레 13분17초09. 라갓 13분17초33을 가리켰다. 라갓은 백지 한 장에 불과한 0.24초 차이로 은메달에 머물렀다.
라갓의 전매특허는 막판 뒤집기. 성봉주 박사는 "마지막 400m를 51초대에 주파하는 라갓의 폭발적인 스퍼트에 장거리 황제 베켈레도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 버나드 라갓
1974년 12월 12일
케냐 출생
키 173㎝ 몸무게 60㎏
미국 워싱턴주립대 졸업
5000m 12분53초60 시즌 랭킹2위
1500m 3분26초34 역대 랭킹3위
2004년 5월 미국 시민권 취득
2004년 아테네 올림픽 1500m 2위
2007년 오사카 세계선수권 1500m 1위
2007년 오사카 세계선수권 5000m 1위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 1500m 3위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 5000m 2위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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