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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낙수(落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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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낙수(落水) 효과

입력
2011.08.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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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7월 미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윌리엄 브라이언은 이렇게 밝혔다. "부자들을 더욱 번창하게 하면 그들의 번영이 아래로 새어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반대로 대중의 번영이 모든 상위 계급으로 치오르리라는 게 (우리) 민주당의 구상이다." 금은 복본위제에서 금 단일본위제로 옮겨가려는 공화당의 구상을 비판하며 "노동의 이마에 면류관을 씌우거나 인류를 금 십자가에 못박지 말라"고 외친 것으로 유명한 '금 십자가(Cross of Gold)' 연설의 이 대목이, 요즘 부쩍 자주 거론되는 '낙수효과'의 첫 언급이라고 위키피디아는 전한다.

■ 브라이언은 흠뻑 젖은 외투에서 물이 뚝뚝 듣거나 추녀 끝에서 빗물이 방울져 떨어지는 '낙수(Trickle-down)'대신 성글거나 구멍 난 용기에서 물이 새는 '누수(Leak-through)'라는 표현을 썼다. '낙수'라는 말을 처음 쓴 것은 정치가나 경제학자가 아닌 코미디언이었다. 만능연예인 윌 로저스는 대공황기의 참상을 "빈곤층으로 낙수하리라는 기대 속에 돈이란 돈은 부유층이 전유(專有)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낙수효과가 진지한 경제학적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도 이런 태생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을 법하다.

■ 대신 낙수효과는 일부 거시정책에 반영됐다. 대표적 예가 한계저축성향(=저축증가분/소득증가분)에 근거한 감세정책이다. 부유층의 한계저축성향이 빈곤층보다 높으니, 저축 증대로 투자를 늘리려면 먼저 부유층의 소득을 늘려야 한다. 투자가 고용으로 이어지는 단계에서 낙수효과는 입증될 만하다. 문제는 그것이 결코 자동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산간 다랑논 마을에서 아래 논의 물 걱정이 심한 갈수기일수록 위 논의 물이 아래로 넘쳐 흐를 가능성은 낮다. 정말 긴요한 불경기일수록 낙수효과에 기대를 걸기 어렵다.

■ 존 갈브레이스는 레이거노믹스 이래 미 감세정책의 근거가 된 낙수이론에 대해 "일찍이 1890년대에 시험된 '말과 참새'이론"이라고 폄하했다. '말과 참새'이론은 말들에게 실컷 귀리를 먹이면, 더러 참새가 다닐 길을 만드는 말도 있게 마련이라는 어설픈 주장이다. 나아가 낙수효과는 개념필수적으로 상대적 격차의 심화를 전제한다. 절대 빈곤이라면 몰라도, 상대적 빈곤의 심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금 한국사회에 들이댈 주장은 애초에 아니다. 대통령과 경제 주무장관이 직ㆍ간접적으로 먼지 쌓인 낙수이론을 꺼내 들었으니 여간 의아하지 않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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