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의 조련장에서
네 미소 띤 붉은 말이
돌고 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우뚝 서 있다
현실이라는 슬픈 채찍을 들고서
그리고 난 아무 할 말이 없다
너의 미소는 거짓 없이 참되다
나의 네 가지 진실처럼
* * *
거짓으로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 자꾸만 들어요. 조련장에서 채찍으로 야생마를 길들이는 조련사처럼 내가 나를 길들이고 있다는 서글픈 기분에 대해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조숙한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수군댔다. 내가 게으름뱅이인 척하면 사람들은 게으름뱅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소설을 못 쓰는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글 못 쓴다고 수군댔다. 내가 거짓말쟁이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수군댔다. 내가 부자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부자라고 수군댔다. 내가 냉담한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냉담한 녀석이라고 수군댔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괴로워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을 때, 사람들은 나를 괴로운 척한다고 수군댔다."('사양') 그래도 소설가보다는 시인이 낙관주의자인가 봐요. 시인은 허위의 조련장에서 타인과 자신을 길들이다 말고 괴로워 자신도 모르게 신음했을 때, 그 진실한 소리를 들어 준 한 사람에 대해 노래하네요.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미소는 거짓 없이 참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자끄 프레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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