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서울 종로구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정모(58)씨는 꼭두새벽부터 이웃에서 미용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전모씨의 가게를 찾았다. 이른 시간이라 문은 닫혀 있었지만, 목적은 따로 있었다. 영업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정씨는 이날 전씨의 가게 출입구 사이로 인분을 잔뜩 뿌렸다. 며칠 전에도 망치로 가게의 전면 유리를 깨뜨렸던 정씨는 그러나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는 며칠 후 다시 이른 아침 가게를 찾아가 수리한 지 얼마 안 된 전면 유리를 다시 망치로 내리쳐 깨뜨렸다. 유리 수리비만 도합 140여만원에 달했다.
정씨가 문제를 삼은 것은 전씨의 가게 간판이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여관 간판이 전씨의 가게 간판과 붙어 있어 '영업에 방해가 된다'며 철거를 요구했고, 이에 불응하자 불법 간판이라고 구청에 신고까지 했다.
몇 번의 범행에 정씨의 속은 후련했지만 그는 결국 전씨의 신고로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세 번째 범행으로 유리를 깨트릴 때는 목격자도 있었다. 가게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이모씨가 지켜보고 있었던 것. 정씨가 당시 "남에 일에 참견하지 말라"며 만 원짜리 몇 장을 주고 경찰에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씨는 경찰에 목격진술을 했다.
사정이 급해진 정씨는 아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그는 경찰에 "나는 모르는 일이다. 아마 이씨가 나와 아들을 착각했을 것"이라고 발뺌했다. 정씨는 이도 모자라 담당 경찰에게 "20만원을 준비했으니 지금 진행 중인 사건을 없었던 것으로 해달라"고 유혹했다. 조사를 마친 후에는 목격진술을 한 노점상 이씨를 찾아가 노점의 천막을 찢는 등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김우진)는 재물손괴와 뇌물공여의사표시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 대해 "범행 도구로 보이는 망치가 피고인의 여관에서 발견된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거짓말로 일관해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며 징역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22일 밝혔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