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캠프의 마지막 밤에 내가 머문 지리재(智異齋) 누마루에서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시인을 꿈꾸는 제자들과 열띤 토론이 있었다. 초대 손님으로 온 오 시인이 말문을 열었다. 9월 1일 업그레이드되어 출시되는 새로운 e-book에 대한 경이로 시작된 이야기는 종이책이 사라지는 미래까지 이어졌다.
오 시인이나 나는 그런 미래에 대해 불안해했지만 1990, 91, 92년생인 제자들에겐 새롭지도 않는 오프라인의 시시한 담론이었다. 오 시인의 찬사에 제동을 건 것은 '랭보 시융'이었다. 최근 7달러에 구입한 '문명5 세종대왕 패치'에 대해서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랭보는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중독성이 없다면 실패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건 전자책이 뛰어나도 젊은 세대의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한다면 종이책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들을 인터넷 감염세대라고 지적했지만 이미 이 시대를 새로운 '분서갱유'로 비유한 '시조 재길'은 그 시스템을 창조한 기성세대에 대해 '감염의 숙주'라고 비판했다.
나는 문학으로만 토론하던 제자들이 쏟아내는 현실 언어에 대해 깜짝 놀랐다. 그들은 디지털 시대의 생각하는 '문명'이었고 나는 무조건적으로 비판해온 '문맹'이었다. 내가 틀렸다.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나는 끝없이 날갯짓을 해야만 했다. 나는 도서관 서고의 먼지 쌓인 낡은 개론서였을 뿐이었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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