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이빨이 빠졌다. 그러자 골프장에 낭만이 되살아났다.
'돌아온 황제' 타이거 우즈가 도통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전쟁 같은 긴장감이 넘쳤던 프로 골프계 분위기가 좀 더 여유 있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무결점의 우즈를 따라잡으려 발버둥쳤던 '잃어버린 10년'이 끝나자 정상권 골퍼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파티를 열어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있다"고 22일 보도했다.
골프장에서 멸종됐다가 다시 출몰한 '낭만 골퍼'의 대표 주자는 올해 브리티시오픈을 제패한 대런 클라크(북아일랜드)다. 클라크는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자축하는 의미로 밤샘 파티를 열었고 심지어 기자회견 30분 전까지 술을 마셨는데 이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떳떳하게 밝혔다. 기네스 맥주의 팬인 클라크는 운동선수의 금기인 흡연도 즐긴다.
낭만과 파격에 죽고 사는 골퍼가 클라크뿐은 아니다. 역시 골초이자 '필드의 돈키호테'로 불리는 미겔 히메네스(스페인)는 기자들 앞에서 스페인산 와인 리오하를 찬양하는 시를 읊었고 사이먼 다이슨(잉글랜드)은 아이리시 오픈에서 우승한 뒤 며칠 후 열리는 다음 대회를 앞두고도 맥주 파티를 열었다. 장타자 더스틴 존슨(미국)은 "법을 어기지 않는 한 (담배를 피우든 술을 먹든) 문제될 게 없다"면서 "아무렴 우즈가 골프장 밖에서 하는 일보다 충격적이겠느냐"고 일갈했다.
사실 1990년대 중반 혜성같이 나타난 우즈가 각종 대회를 휩쓸면서, 골프계 일각에서는 과거의 낭만이 사라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우즈의 기량이 워낙 출중했기에 그에게서 자극받은 다른 선수들이 식이요법 등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야 했고 경기 중에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헬스클럽으로 내몰리는 선수도 많았다.
스포츠심리학 전문가인 지오 밸리언트 교수는 "권투를 할 때 몸이 상하는 만큼 골프를 하면 정신적 타격을 입게 된다"면서 "나는 내가 아는 골퍼들에게 밖으로 나가 와인을 좀 더 마시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골프가 신경을 테스트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적당한 여유와 웃음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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