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권모(40)씨는 경북 구미시에서 여성 속옷을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혔다. 단순 절도 사건으로 조사하던 구미경찰서는 권씨에게 성폭력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권씨의 유전자(DNA) 분석을 의뢰했고 6년 전 포항에서 발생한 여고생 성폭행 사건 때 채취한 정액의 유전자와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국 권씨에게는 절도에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위반 혐의가 추가됐다.
2008년부터 지난달까지 송파구와 광진구 일대에서 여성이 혼자 사는 집에 침입해 5명이나 성폭행한 김모(39)씨. 서울 광진경찰서는 김씨를 최근 검거했지만 상당한 고생이 뒤따랐다. 경찰은 지난 1월 성폭행 현장에서 검출된 DNA 5개가 동일인에게서 나왔다는 감식 결과를 받았다. 하지만 2003년 성폭행 범죄를 저질러 그 해 감옥에 들어간 김씨가 2008년 2월 출소하는 바람에 그의 DNA 정보가 국과수엔 없었다. 결국 김씨는 피해 여성들의 주민번호를 도용하는 바람에 경찰에 꼬리가 잡혔다. 수사기관이 DNA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미제가 될 수도 있었다.
강력범죄 해결 과정에서 DNA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나 DNA 채취와 기간 확대를 두고 인권단체 등이 수사편의주의라고 반발하는 등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해 7월26일'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일명 DNA법)이 시행된 후 DNA 수사기법으로 강력사건 506건을 해결했다고 22일 밝혔다. 강간(128건), 강도(53건), 아동 상대 성폭력(22건) 등도 다수 해결됐다. DNA 정보는 강도 강간 살인 등 11개 강력범죄를 저질러 구속영장이 발부된 피의자의 DNA를 구강점막에서 채취한 뒤 숫자와 부호로 조합된 신원확인 정보로 변환해 영구 보관된다.
강력 사건을 수사하는 일선 경찰서에서는 DNA 채취 적용시점을 법이 시행된 2010년 7월 이전까지 소급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서울 일선경찰서의 한 간부는 "DNA 정보가 많을수록 사건 해결이 쉬워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권 문제 때문에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의 한 간부는 "인권 문제를 제기하지만 강압수사와 같은 인권에 반하는 수사에서 과학적 증거에 기반하는 수사로 대체해나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했다.
DNA 채취 초기에는 구속 피의자들의 반발로 영장을 발부 받기도 했지만 현재는 정착 단계에 들어섰다. 경찰청 유전자분석센터에는 매월 전국에서 1,000건 정도의 DNA 시료가 새로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진보단체는 반대 입장이 확고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한국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범죄자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한 상태"라며 "수사를 위해 개인의 정보를 더 제공하는 것은 문제"라고 밝혔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인권위는 지난 6월과 7월 "DNA 채취가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과 의견을 제출하는 등 문제를 삼고 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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