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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시장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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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시장님의 눈물

입력
2011.08.2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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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님이 울었다. 그 며칠 전에는 회장님이 울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1일,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은 10일 기자회견에서 울먹였다. 충심을 믿어달라는 호소였을 것이다.

복지 포퓰리즘이 나라를 망친다고 믿는 오 시장은 "지속 가능한 복지가 뿌리를 내리는 데 한 알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했다(어, 이게 신임 투표였나?). 우국충정과 비장한 각오를 밝히는 대목마다 눈물을 훔쳤고 마지막엔 무릎까지 꿇었다.

누구는 뭉클하더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반응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쇼 하고 있네. 다급해지니까 투표율 끌어 올리려고 별 구질구질한 신파극까지 하는구나. 투표가 무슨 도박판이냐, 걸긴 뭘 걸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더니(누가 묻기나 했나?) 시장직까지? 정책 투표인 만큼 논리적으로 설득하면 될 일이지, 웬 눈물? 이런 반응에는 오버 액션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 있다. "밥 안 준다고 우는 애는 봤어도 밥 안 주겠다고 우는 어른은 처음 본다"는 비아냥까지 듣는 것을 보면, 투표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시장님은 스타일 확실히 구겼다.

회장님의 눈물에 대한 평가는 더욱 차갑다. "3년 안에 경영을 정상화해서 해고된 한진중공업 가족 여러분을 모셔오겠다"며 울먹였던 조남호 회장은, 그 뒤 18일 국회 청문회에서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다 죽은 세 노동자의 사진을 보고 누구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가족이라더니, 얼굴조차 모르는구나. 그들의 한 맺힌 죽음은 그저 지난 일일 뿐이었구나. 한진중공업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는 동안 두 달 가까이 해외 출장 중이라더니, 지난달 몰래 들어와 2주간 머물다 다시 나갔다가 돌아온 회장님답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해고 노동자 가족들은 또 한 번 피눈물을 흘렸다.

시장님도, 회장님도 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울어선 안 된다. 시장님은 아이들 먹을 밥에 복잡한 정치적 계산으로 불순물이 잔뜩 낀 눈물을 빠뜨려 더럽혔다.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회장님의 눈물은 안 그래도 울고 있는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을 우롱했다. "해고는 살인"이라고 절규하는 밥줄 끊긴 노동자들의 고통을 그는 위로하는 척 거짓 연민으로 모독했다. 그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타워크레인에서 오늘(23일)로 230일째 농성 중인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은 21일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사수대 신동순 동지의 단식 7일차. 사측의 정말 비인간적인 처사들을 견디다 못해, 이번에도 누가 죽어야 싸움이 끝날 것 같다며 곡기를 끊은 동지를 두고 떠넣는 호박죽 한 숟갈의 무게가 천근이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조남호는 얼마짜리 점심을 먹었을까."

신동순씨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지키려고 지난 6월 17일부터 크레인 중간에 올라가 있는 4명의 해고 노동자 중 한 명이다. 아이들의 밥, 노동자의 밥줄이 걸린 기자회견의 효과장치로 눈물을 동원한 시장님과 회장님은 호박죽 한 숟갈이 왜 천근같이 무거운지 죽었다 깨나도 모를 것 같다. 더러운 싸구려 눈물이 하늘 같은 밥을, 목숨을 얼마나 비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것 같다.

누구나 먹어야 산다. 밥줄이 목숨줄이다. 그래서 밥은 하늘이다. 우리는 이렇게 배웠다. "밥 가지고 장난 치는 건 몹쓸 짓이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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