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주민투표에 관한 여야 의원의 TV토론을 지켜보다 어처구니 없는 꼴에 실소한 적이 있다. 날 선 공방을 하던 한나라당 쪽 패널이 민주당 김성순 의원에게"작년에는 부잣집 아이까지 무상급식을 하는 것은 과잉 복지라고 주장하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지난해 3월인가 김 의원이 낸 보도자료를 증거로 제시했다.
당황한 김 의원은 요령부득으로 횡설수설하더니 "무상급식이 복지가 아니라 교육 문제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고 얼버무렸다. 그는 서울시 공무원 과 민선 구청장, 국회의원으로 일하면서 남다른 성실성을 보였다. 그래서 더욱 구차한 대거리가 보기 딱했다.
분수 잊은 머슴 다스리는 수단
주민투표 제도는 대의민주제의 정치세력에 대한 불신이 바탕이다. 정치인들은 흔히 그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 이기적 이익을 좇는다. 비용은 전체 납세자에 부담시키면서 지역구나 지지계층을 위해 예산을 받아내는'포크배럴(pork barrel)'정치행태가 대표적이다. 정치 위상과 권력, 지지 확대를 위해 정치적 신념과 노선을 바꾸는 기회주의 행태도 서슴지 않는다. 공동체의 이익보다는 이기적 계산이 앞선다. 정당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 의원들은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빗나간 정치세력을 통제하는 장치가 직접민주제 주민투표다. 이를테면 집안 살림을 맡긴 고용인이 제 몫을 챙기느라 곳간이 비는 것도 아랑곳 않는 행태를 막는 수단이다. 선거 때만 한껏 허리를 굽힐 뿐 함부로 주인 행세하는 머슴을 다스리는 방책이다. 무상급식이든'디자인 서울'이든, 주인보다 제 뜻을 고집하는 교육감 시의원 시장 등 선출직 대표들에 고삐를 채워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직접민주제의 부작용 우려가 뿌리 깊었다. 2003년 주민투표법을 만들 때도 보수 쪽은 대의민주주의 약화, 다수의 횡포 등을 걱정했다. 그래서 투표청구 요건과 절차의 엄격한 제한을 요구, 결국 진보 쪽의 시각에는 불만투성이 법이 제정됐다.
주민참정 확대에 적극적인 학자들이 지적하는 주민투표법의 문제점은 우선 투표 청구에 필요한 서명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또 투표에 부칠 수 없는 사항이 지나치게 많아 주민투표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 그 가운데 '재판중인 사항'은 뜻이 모호해 삭제해야 옳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정책의 핵심인'예산에 관한 사항'을 대상에서 뺀 것은 주민투표의 목적인 주민 통제를 원천 봉쇄하는 잘못이다. 그래서 '지방의회의 예산안 의결과 결산 승인'만 주민투표에 부칠 수 없도록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뒤늦게 한가하게 전문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한 이유가 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논란에 앞장선 정치세력과 지식인, 언론은 전문가들의 논의에는 전혀 무지한양 제멋대로 투표의 정당성, 합법성을 다퉜다. 법학자인 곽노현 교육감은 그러려니 하더라도, 명색이 법률가들이 짐짓 무식하게 법규정을 끌어 대는 꼴은 한심했다. 아무리 정치에 물들었더라도 무상급식의 정의로움을 진정 믿는다면, 주민투표의 합법성을 다투는 데도 공명정대해야 마땅하다.
주민투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한 법원 결정은 지레'불법투성이'라고 떠든 법률가와 언론에는 통렬한 질책이다. 본안 소송이 남았지만, 법원은 주민투표법의 모호하고 모순된 점까지 빠짐없이 짚었다. 그런데도 '불법'을 되뇌는 것은 끝내 주인을 기만하는 것이다. 이기적 정치세력 무리에 끼어 한 몫 나눠 가지려는 술책이기 쉽다.
정치 놀음에 현혹되지 않아야
전면 무상급식을 한다고 살림이 이내 거덜나지 않는다. 선진국도 복지를 늘렸다 줄였다, 시행착오를 되풀이했다. 중요한 것은 분수 모르는 머슴들의 방자한 놀음에 휘둘리지 않고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눈물로 시장 자리를 건다고 현혹될 일이 아니다. 정책투표가 신임투표로 변질될 리도 없다. 내년 총선ㆍ 대선이 좌우된다는 경고도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 없다. 어디까지 무상급식을 해야 적절할지, 그걸 잘 헤아려 선택할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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