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월남해 서울에 살고 있는 미수(米壽)의 할머니가 60여년간 삯바느질로 모은 전 재산인 아파트 한 채(시가 5억5,000만원)를 천주교 평양교구 성당 건립을 위해 써달라고 서울대교구에 쾌척했다.
평양교구 신의주 진사동본당 출신으로 서울 중앙동 본당에 다니고 있는 김숙일(88)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스물 한 살 때 신의주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김 할머니는 12일 가톨릭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인 정진석 추기경의 집무실을 찾아 전 재산을 기증했다.
정 추기경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그는 “평생 하느님의 손만 붙잡고 살며 평양교구를 위해 봉헌할 날만 기다려왔다”며 “북녘에 못 가도 좋으니 어서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언제든 통일이 되면 자매님께서 봉헌하신 이 귀한 재산이 평양교구 재건에 빛이 될 것”이라며 답례했다고 한다.
딸 차영주(66)씨는 “남한에 내려와 살 길이 막막했는데 어머니는 죽을 힘을 다해 하느님만 붙잡고 사셨다”며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고 참고 견뎠으며, 백화점에 가도 1만원짜리 물건 하나 산 적이 없을 정도로 평생 절약하는 게 몸에 배셨다”고 전했다. 차씨는 “북녘에 부모님을 두고 내려와 북한에 있는 부모 형제 산소를 찾아 가보는 게 어머니의 평생 소원”이라며 “통일이 돼 북한에 성당을 지을 때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어머니가 기쁜 마음으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김 할머니는 1948년 3월 고향 평북 신의주에서 먼저 월남한 남편을 찾아 세 살 배기 딸만 데리고 보름을 걸어 서울로 왔다. 하지만 남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6ㆍ25전쟁이 터져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전쟁이 끝난 뒤 남편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살 길이 막막했던 할머니는 피란길에서 인연을 맺었던 성가소비녀회 수도자들의 도움으로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내 양재소에서 성직자들의 제의(祭衣)와 신학생들의 교복을 재단하고 재봉질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왔다.
현재 관악구 성현동 아파트에서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는 김 할머니는 하루도 미사를 거른 적이 없을 정도로 신실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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