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 특히 새만금, 부안 방폐장, KTX 천성산 터널 공사 등 국책사업으로 인한 갈등이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도 뾰족한 해법 없이 때마다 갈등만 반복하는 꼴이다. 전문가들은 사후가 아닌 사전에 갈등에 대응하는 예방 시스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간의 설득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반복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우선 갈등중재자의 신뢰 부재를 꼽았다. 특히 갈등 관리의 주체가 돼야 할 정부가 갈등을 오히려 촉발시키고 있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참여정부의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으로서 갈등조정연구를 총괄했던 박재묵 한국사회학회장(충남대 교수)는 "정부가 사업의 타당성을 충분히 따져보지 않은 채 대통령과 정치권의 공약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보니 주민들의 반발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내영 고려대 정외과 교수는 "정치적 양극화, 타협과 협상 문화의 실종, 지방정부의 제도적인 갈등 조정기제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전희경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실장도 "국책사업 입안 과정에서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고 성급하게 사업이 결정되면서 반대의 빌미를 주고 사업이 표류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신뢰성 높은 사회적 조정자 또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안의 이해당사자가 아니면서도 정부와 주민 모두에게 인정 받는 전문가가 참여하는 프랑스식 '제3의 신뢰기구' 설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에도 사회통합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정부 쪽 구미에 맞는 원로 중심이다 보니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김종남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는 지적도 있다. '중재자를 신뢰하는 문화 구축 필요성'(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제기된다.
갈등을 선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재묵 교수는 "사업을 공표하기 이전부터 '갈등영향평가' 제도 등을 시행해 어떤 갈등이 예상되고 어떻게 대응해나가야 할지 미리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갈등 예방을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하려 해도 우리는 사업이 결정돼야 그런 예산이 나오는 구조다. 법적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선진국에서 갈등 관리는 인내와 시간의 싸움"이라며 "보스턴 빅딕(Big Dig) 사업처럼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상대의 논리를 살피면 반대나 갈등도 줄어들고, 수용 가능한 타협점이 생기는데 우리는 그런 여유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김호기 교수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토론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거버넌스(협치)의 방식을 택해야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권영은기자 you@hk.co.kr
정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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