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딸을 둔 맞벌이 주부 신모(32)씨는 요즘 주말마다 '가족 신문'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딸의 방학 숙제인데 도저히 1학년생이 할 수 없는 수준이라 신씨 혼자 다 만들고 있다. '분량은 A4용지 8~16매', '반드시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할 것' 이 가족 신문 만들기의 조건이다.
가족 신문을 만들고 나면 음식문화 개선을 주제로 한 글짓기, 글로벌 에티켓과 관련된 표어ㆍ포스터 만들기도 해야 한다. 신씨는 "학교에서 아이 학년보다 높은 수준의 방학 숙제를 너무 많이 내 줘 결국 '엄마 숙제'가 되고 있다"며 "아이에게 도움도 안 되고 부모들의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초등학교 개학이 다가오면서 이처럼 엄마들은 아이 숙제를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가족신문 만들기, 현장체험학습 후 보고서 작성하기, 재활용품으로 미술품 만들기 등 초등학생의 방학숙제가 평균 7~10개에 달하는 데다, 수준에 맞지 않는 숙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원고지 쓰는 법을 배우지 않은 1학년생이 혼자 원고지 글짓기를 한다거나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글로벌 에티켓'으로 표어를 만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들이 서울의 한 초등학교 3학년인 주부 김모(37)씨는 "방학숙제로 탐구 주제를 정해 계획 동기 방법 결과 등을 쓴 보고서를 작성하라는데 10살짜리가 무슨 말인지 알기나 하겠냐"며 "다른 엄마들은 인터넷에서 탐구내용 등을 베낀다고 하지만 난 그냥 안 하고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맞벌이 부모들은 더 애가 탄다. 남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7)씨는 초등학교 5학년 딸의 방학 일지를 거짓으로 써낼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아이와 함께 식물을 키우고 일지를 쓰라는데 바빠서 쓸 새가 없다"며 "방학 숙제가 아이 성적과 직결되니까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면 대행업체에 맡기고 싶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실제로 숙제 대행 업체도 성행한다. 인터넷 숙제 대행 사이트 등에서는 가족 신문은 1장에 1,000원, 드로잉 및 수채화는 4절지 기준 4만원 등으로 거래되고 있다. 또 대행업자들은 대행한 것이 들통나지 않도록 "학년에 맞게 완벽하게 해준다"는 것을 강조한다. 현장체험을 대신해주는 업체도 성업 중이다.
아르바이트로 미술품 만들기 등 숙제를 대행하는 서울의 한 사립대 디자인과 2학년 A씨는 "예전에 초등학생 미술을 지도하면서 아동 미술작품의 특성을 포착했다"며 "정말 아이가 한 것처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녀가 공부를 하느라 방학 숙제를 할 시간이 없거나 부모도 대신 못 해주는 경우에 주로 의뢰하는데 하루 평균 2건 정도씩 의뢰를 받는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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