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청와대 정무ㆍ국정기획수석을 거친 이명박 대통령의 오랜 참모 출신이다. 스스로도 "대통령과 생각이 비슷하다"고 할 정도로 대통령의 복심을 가장 잘 아는 측근으로 꼽힌다. 그래서 요즘 각종 현안에 대한 그의 발언은 곧잘 '정권의 입장'과 동일시 된다.
박 장관은 지난 1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복지 포퓰리즘 논란과 관련, "꼭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는 '맞춤형 복지'가 중요하다"며 "등록금 인하는 맞춤형 복지지만 무상급식ㆍ무상의료는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감세의 정당성도 재차 강조했다. "MB정부의 1차 감세조치로 '감세가 경기를 활성화해 성장ㆍ분배까지 살리는' 이른바 낙수효과가 입증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인터뷰 도중 임태희 청와대 대통령실장의 "감세시기 조정은 가능하다"는 발언 소식이 전달됐지만, 그는 "감세기조에는 변화가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여권에 이어 청와대까지 감세시기와 폭을 조정하겠다는 타협안을 내놓음에 따라 감세 철회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감세 논란이 뜨겁습니다. 추가감세 계획을 철회할 용의는 없으신지요.
"감세는 '낮은 세율ㆍ넓은 세원'이라는 교과서적 가르침과 부합합니다. 최근 사회보험료 같은 준조세가 늘어나는 부담도 눈 여겨 봐야 합니다. 대외적인 정책 신뢰도도 고려해야 하구요. 특히 MB정부 들어 추진한 1차 감세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은 물론 투자ㆍ일자리ㆍ세수 증가, 소득분배 개선 등 이른바 '낙수효과'가 입증됐습니다. 감세는 예정대로 추진해야 합니다."
-낙수효과가 입증됐다는 데 대해 반론도 많은데요.
"추세적인 전환인지 여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통계는 정직한 겁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투자나 고용이 많이 늘었고 양극화 지표도 개선되고 있습니다. 아직도 2009년 통계를 갖고 앵무새처럼 '악화됐다'고 되뇌는 건 억울합니다."
-이 대통령이 약속한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이 가능할까요.
"당초 계획했던 2014년 균형재정에 맞춘 목표치가 있는데, 작년 재정수지가 국내총생산 대비 -1.1%를 기록했습니다. 목표치보다 2년 앞당겨 달성한 셈입니다. 낙관하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달성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합니다."
-최근 선진국발 재정위기로 경기침체 우려가 높습니다. 세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텐데요.
"우선 경기 측면에서 부정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당분간 성장률 전망 수정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세수가 줄어들 여지에 대비해 세외수입을 늘리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겁니다. 인천공항이나 산은금융지주, 기업은행 보유 지분을 당초 계획대로 매각할 방침입니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도 무산된 마당에 시장 상황이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만.
"인천공항은 국회에서 관련 법 통과가 안되면 애초 잡아놓은 매각수입이 아예 무산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각수입이 다소 줄더라도 국민주 방식을 적극 검토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산은지주 역시 내년 세입에 3조4,000억원이 반영돼 있는데, 수신기반이 부족한 상황에서 매각 성사가 우려되지만 어떻게든 매각을 위한 매력을 높이기 위해 금융당국과 협의 중입니다."
-균형재정을 조기 달성하려면 예산도 줄여야 할 텐데, 어떤 부분이 우선 조정 대상인가요.
"모든 분야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합니다. 원칙은 이렇습니다. 성과평가가 미흡한 사업, 집행실적이 부진한 사업, 국회ㆍ감사원 등에서 지적 받은 사업은 손 보겠습니다. 특히 연구개발(R&D)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처럼 최근 예산이 많이 증가한 분야는 중복이나 유사사업을 정비하려 합니다.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되는 만큼 사회간접자본(SOC) 분야도 투자규모를 적정하게 조정할 계획입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전자, 자동차 등 우리 주력수출품의 피해가 클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데요.
"우려도 있습니다만 낙관론도 많습니다. IT는 산업 싸이클상 침체기로 접어들었지만 나머지 분야는 오히려 위기 때 점유율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기회론도 많습니다. 성장 전망도 유럽의 금융거래세 도입 방침, 미국의 추가 경기부양 방안 등 외부 변수들을 당분간 지켜봐야 합니다."
-'복지 포퓰리즘'을 누차 경계하면서 '맞춤형 복지'를 강조했는데, 둘의 차이가 뭡니까.
"소득수준을 고려하면서 취약계층별로 꼭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는 게 맞춤형 복지 입니다. 반면, 포퓰리즘은 재원조달 방안 등 실현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정책을 남발하지요.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반값 등록금에 이어 무상급식ㆍ무상의료가 이슈인데요.
"현재 당정이 검토 중인 등록금 부담 완화방안은 소득수준 별로 차등 지원한다는 점에서 맞춤형 복지 원칙에 부합합니다. 하지만 무상급식ㆍ무상의료는 소득과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지원하고 재원이 많이 들어가 지속 가능하지 않으므로 맞춤형 복지라 하기 어렵습니다."
-국민소득 2만달러대인 우리 복지수준이 선진국의 2만달러 시기보다 뒤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나라마다 재정 여건이 다르므로 일률 비교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복지제도가 시행 초기라는 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지출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점,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 국방ㆍ통일비용 부담 등 우리만의 특성을 아울러 봐야 합니다. 비교하려면 현재 선진국 수준과 우리의 미래 수준을 비교해 주십사 부탁 드립니다."
-취임 후 의욕적으로 8ㆍ5 근무제(오전8시 출근, 오후 5시 퇴근)를 주창했는데 여전히 반발이 심합니다. 혼자만 열심이라는 비아냥도 들리는데요.
"5시 이후 퇴근할 수 있다는 것과 5시 퇴근을 혼동해선 안됩니다. 각자 사정에 맞게 초과근무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눈치 때문에 못 가는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서 제가 먼저 5시 퇴근을 솔선수범하고 있습니다. 총론은 찬성하지만 각론은 반대하거나 남에게는 권고하면서 자기는 실천하지 않는 이율배반적 행태는 지양돼야 합니다."
대담=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정리=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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