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가 뇌라면, 소프트웨어는 영혼이다."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열린 세계개발자회의(WWDC)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뇌가 신체의 사령탑인 것은 맞지만, 뇌를 지배하는 건 결국 정신과 영혼이다.
잡스의 표현대로 세계 정보기술(IT) 산업 권력은 하드웨어(기기)에서 소프트웨어(프로그램)로 급격 이동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IT시장을 이끌었던 굴지의 하드웨어업체들이 이젠 소프트웨어 기업에 '하청화'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무너지는 하드웨어 업체들
모토로라는 세계에서 무선전화를 처음으로 만든 회사다. 그만큼 상징성이 강한 간판 하드웨어 기업이다. 그러나 미국 IT산업을 대표했던 83년 역사의 모토로라는 이제 설립 13년에 불과한 구글로 넘어가 '안드로이드 폰'생산기지로 전락하게 됐다.
휴렛팩커드(HP)는 한 때 세계 최대 컴퓨터(PC) 회사였다. 원래는 서버 업체였지만 칼리 피오리나 전 CEO가 컴팩을 인수하면서 초대형 하드웨어기업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스마트 물결을 따라가지 못했고, 결국 매각을 전제로 PC부분을 분사하게 된 것이다.
부동의 세계1위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도 인수합병(M&A)설이 끊이질 않는다. 애플과 삼성전자에 치여 권좌를 내주게 된 노키아는 절치부심 재기를 다짐하고 있지만, 시장에선 곧 다른 기업에 인수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애플의 힘
몰락하는 하드웨어의 이면엔 부상하는 소프트웨어가 있다. 그 진원지는 역시 애플이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회사다.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모바일 기기(하드웨어)는 자신의 브랜드로 판매만 할 뿐, 애플이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 부품에서부터 케이스까지 100% 외부 발주다. 애플은 이 하드웨어를 구동시킬 운영체계(OS)인 iOS와 소프트웨어와 외형 디자인만 담당할 뿐이다.
노키아, 모토로라 등 종전 세계 모바일시장을 주도했던 하드웨어 회사들이 무너진 것도 다 애플 때문이다. 노키아와 삼성전자에 밀렸던 모토로라는 한때 '레이저'슬림폰을 내놓으며 재기를 모색하나 싶었지만, 곧바로 밀려온 아이폰 태풍에 걷잡을 수 없이 침몰하고 말았다. HP가 '터치패드'출시를 통해 태블릿 PC 시장에서 6개월 만에 철수한 것도 결국은 아이패드의 높은 벽 때문이었다는 분석이다. 이가근 하나대투증권 연구위원은 "노키아나 모토로라, HP 등을 비롯한 하드웨어 업체들의 몰락은 소프트웨어를 강화시킨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부터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권력 구글
지금까지 세계 IT산업에서 OS와 단말기제조(하청) 및 온라인 마케팅 능력을 갖춘 기업은 애플뿐 이었다. 하지만 모토로라 인수로 구글이 단말기제조 능력을 직접 보유함에 따라, 애플처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결합한 토털 IT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로 인해 현재 세계IT시장은 애플과 구글로 양분되어가는 양상이다.
구글은 100% 소프트웨어 회사다.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을 갖고 있고, 안드로이드로 모바일OS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도 구글 소유다. 업계 관계자는 "검색엔진과 유튜브, 여기에 구글 스트리트뷰나 구글 어스 같은 대중성 높은 부가서비스까지 갖고 있어 종합적인 영향력으로 보면 애플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면서 "모바일 싸움은 이제 iOS와 안드로이드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PC시대의 최대 소프트웨어 회사였던 마이크로소프트(MS)는 모바일시대가 도래하면서 애플과 구글에 밀리는 형국. MS가 반전을 위해 노키아 인수를 추진 중이란 얘기가 계속 흘러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문형돈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연구원은 "소프트웨어의 우위는 점점 더 심화될 것"이라며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콘텐츠 생산 여부에 따라 글로벌 IT 업계의 주도권도 옮겨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재경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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