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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바둑 랭킹 9위꺾은 여중생 최정 초단 "마음 비우니 놀랄만한 승리 거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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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의 만남] 바둑 랭킹 9위꺾은 여중생 최정 초단 "마음 비우니 놀랄만한 승리 거둬…"

입력
2011.08.2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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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바둑계에서 한국의 위치는 양궁과 비슷하다. 국내 1위라면 세계 1위급이다. 선수들 기량이 대부분 출중해서 프로 입단조차 하지 못한 아마가 프로를 이기는 일도 있으니 초단이 9단을 이기는 일은 흔하다. 그런데도 16일 열린 제39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예선 결승에서 최 정(14ㆍ충암중3) 초단이 조한승(29) 9단을 이기고 본선에 진출한 일은 유독 관심을 끌었는데, 최 초단이 여자기 때문이다.

여자들끼리 따로 입단 승부를 치르고 여성들만의 대회가 존재하면서 여자 바둑은 남자 바둑보다 한 수 아래로 접어주는 상황. 중국인 루이나이웨이(47) 9단이 한국기원 소속으로 남자들과 대등한 승부를 펼치면서 국수에까지 오른 적도 있지만 입단 2년차인 토종 여중생이 올해 승률 1위, 랭킹 9위인 전성기의 남자 기사를 물리치고 메이저 바둑대회의 본선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여자도 남자들과 대등하게 겨루는 시대를 최 초단이 열어줄 것인가. 2000년 17세의 나이로 KBS 바둑왕전 본선에 올랐던 박지은(28) 9단 이후 더 어리고 더 강한 여성 신예의 등장에 바둑계의 기대가 크다. 밝고 명랑한 소녀를 만나봤다.

_봉사활동을 다녀왔어요?

"네, 여성상비군(바둑 국가대표) 소속으로 충남 당진 앞바다에 있는 난지도라는 섬의 보육원에 2박 3일로 다녀왔어요. 서울서 버스 타고 2시간쯤 가고 배로 30분쯤 들어가는 곳인데, 진짜 고생했어요. 바둑도 가르치고 바둑대회 같은 것도 진행했는데 어휴~ 애들이 말을 너무 안 들어요. 그래도 좋았어요."

_바둑선수들은 바둑밖에 모르는 줄 알았어요.

"언니(선배 여성기사)들이 이런 것도 다 하는 게 좋다고 해요. 바둑밖에 모르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요."

_바둑만 알아서 세계 기전을 휩쓰는 사람과 다양하게 잘 사는 사람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두 가지 다 잘하고 싶어요. 헤헤"

_바둑은 어떻게 시작했어요?

"아빠 취미가 바둑이에요. 처음에는 엄마한테 가르치셨는데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셨대요. 그래서 제가 다섯 살이 되자 저한테 가르치셨어요. 광주에 살 때인데 일곱 살이 되자 동네 바둑학원에 보냈어요."

_바둑이 재미있었어요?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별로 재미없어 했나 봐요. 학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걸 아빠가 뭐든지 시작하면 1년은 해야 한다고 해서 계속 다녔어요. 그런데 2년쯤 되어서 그 학원에 있는 애들을 다 이기니까 김성미 원장님이 서울로 보내라고 하셨어요. 원장님이 정말 고마운 분이에요. 아빠가 바쁘시고 엄마도 (오빠가 몸이 약해서) 못 따라오니까 원장님이 겨울방학에 추운데 저를 데리고 올라오셔서 저한테 맞는 도장을 찾아주셨어요. 제 바둑 성향이 공격적이라고 유창혁 사범님 도장에 가야 한다고 했어요. (유창혁 9단의 별명이 '세계 최고의 공격수'이다) 그때 유창혁 도장이 마포에 있어서 엄마가 저와 오빠만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2005년 1월이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요."

_아버지와는 지금도 바둑을 둬요?

"아버지가 두지 말자고 해요. 실력 준다고. 아빠는 한국전력에 근무하셔서 지금은 울진원자력발전소에 계세요. 2주에 한번씩 주말에 올라오시는데, 그러면 한번은 두지요."

_아버지가 관심이 제일 많겠어요.

"네. 매일 전화하세요. 무슨 말 하냐고요? 말썽 부리지 말고 (바둑)공부 열심히 해라. 이겼다고 우쭐하면 안된다."

_말썽 부려요?

"어려서는 애들 막 발로 차고 까불었어요. 하하. 제가 좀 경솔해서 다 이긴 판을 놓칠 때가 있어요."

_어떻게 고쳤어요?

"방심하지 말자, 스스로에게 계속 주입을 시켜요. 이번에 조한승 사범님이랑 할 때도 계속 그랬어요. (초반부터 우세했던 판이라) 너무 긴장해서 나중에는 막 손이 덜덜 떨리더라구요."

_조 9단을 이긴 비결이라면?

"마음을 비운 거죠. 이긴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한 수 배워야지 하고 뒀는데 이겼어요."

_그럼 늘 비우면 되잖아요.

"그게 쉽지 않아요. 왜냐고요? 이기고 싶으니까. 그런데 사범님과는 워낙 실력차가 크니까 이긴다는 생각을 아예 안한 거예요. 조 사범님이 여성상비군 코치에요. 저희 가르쳐주시면서 세 번 정도 대국 했거든요. 한번도 이긴 적이 없어요. 그랬는데 그 날은 정말 날 같았어요. 아빠도 전화하셔서 좋은 꿈 꿨다고 하고, 저도 전날 밤 잠을 잘 못 잤는데도 기분이 아주 상쾌했어요. 제가 나이 어린 덕도 있어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두면 저는 져도 본전인데 나이 드신 분은 저한테 지면 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부담이 되겠지요. 제가 프로바둑선수 중에는 이동훈(13) 초단에 이어 가장 나이가 어리거든요."

_조 9단을 이긴 날 반응 대단했겠어요.

"네, 도장에 갔더니 오~~이제 잘나가네 그랬어요. 언니들이 제일 많이 기뻐해줬어요.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_바둑은 여자가 불리한가요?

"아뇨."

_그런데 더 못 두는 이유는요?

"나이가 들면서 다른 데 더 관심이 많아져서 아닐까요?"

_최 초단은 바둑 생각 밖에 없어요?

"하하 저도 노는 것 좋아하고, 얼굴 보면 불만도 많고. 하지만 바둑공부를 더 많이 하려고 해요."

_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요?

"충암바둑도장에 다녀요. 그곳에서 먹고 자고 개학 중에는 학교도 다니고. 집에는 주말에만 와요. 도장에 있을 때는 오전 7시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밥 먹고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바둑 공부해요."

_입단하면 도장은 그만 두지 않나요?

"계속 공부하려면 도장에 다니는 게 좋아요. 저희 도장에도 프로가 10명쯤 있어요. 더 되나?"

_주말은 어떻게 보내요?

"주말에는 좀 쉬어야지요. 아빠가 오시면 가족이 놀러도 가고 영화도 보고. 지난번에 영화 '최종병기 활'을 봤어요. 재미있어요. 못 본 드라마도 재방송으로 몰아서 봐요. 요즘 재미있는 건 '공주의 남자'. 엄마가 고만 놀고 (바둑)공부좀 하라고 구박해요. 그러면 조금 반항했다가 공부해요. 헤헤"

_학교 공부는 잘해요?

"중간쯤. 애들이 진짜 공부 안 하나봐요. 저는 오전 수업만 해요. 시험공부는 벼락치기로. 좋아하는 과목이요? 선생님이 좋은 과목이 좋아요. 요즘은 사회선생님이 좋아서요, 다른 과목은 70점대인데, 사회는 90점대에요. 수학 영어 이런 거는 엄청 못해요. 이런 공부는 단기간에 안 되는 것 같아요."

_바둑 등수는 어디쯤이에요?

"50국 이상 둬야 랭킹이 잡히는데, 저는 아직 45국 밖에 안둬서요. 작년에는 1승 5패고, 올해는 26승 13패예요. 올해는 남자 선수와 더 많이 겨뤘어요. 절반 이상은 이겨요." (한국기원 자료실에 보면 올해 남자들과 17승10패, 여자들과 9승3패를 기록했다. 8월20일 현재 올해 승률은 67%로 승률순위 26위, 다승순위 23위를 기록했다. 올해 승률로만 따지면 이창호 선수와 동급이다.)

_올해 남자프로 시니어(45세 이상)와 여성프로들이 겨루는 지지옥션배에서 8연승을 하면서 남자 선배들을 많이 물리쳤어요. 시니어 중에는 누가 제일 세던가요?

"역시 기량은 서봉수 사범님."

_처음 만났을 때 기분은?

"그냥 열심히 두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_실제로 붙어보니 어땠어요?

"아무래도 젊을 때랑 다르지요. 지지옥션배 전에 올해 한번 더 뒀는데 제가 이겼어요."

_지지옥션배에서 조금만 더 이겼으면 유창혁 사범과도 붙을 수 있었는데.

"헤헤 아직은 붙고 싶지 않아요. 저는 더 이기고 싶어요."

-지면 어떻게 푸나요?

"저는 스트레스 많이 안 받아요. 금방 잊어버려요. 그리고 복기를 하기 전에는 내가 이긴 게임 같아서 화가 나서 그냥 나가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막상 복기를 해보면 내가 진 이유를 확실히 알게 되잖아요. 복기를 하면서 마음이 가라앉아요."

_제일 아팠던 게임은?

"중1때 입단대회 나갔는데요. 4강에서 거의 다 이긴 판을 졌어요. 그날 엄청 울었어요."

_가장 기뻤던 때는?

"역시 입단했을 때."

_바둑 잘 두는 비결은?

"공부 열심히 하는 것 뿐이에요. 체력도 중요해요. 체력이 딸리면 마무리가 약해지거든요. 그래서 밥을 많이 먹어요. 좋아하는 음식이요? 초밥이요. 인터뷰 때는 갈비라고 했더니 경기 이기면 집에서 갈비를 사줘요. 갈비는 집에서도 먹을 수 있는데. 왜냐고요? 애들이 초밥 좋아한다 그러면 좀 이상할 것 같아서. 인터뷰 때마다 먹는 거 이야기 나와서 먹는 것만 엄청 좋아하는 사람 같이 됐어요. 사실이긴 하지만. 헤헤."

_바둑 말고 다른 취미가 있어요?

"아, 바둑 잘하려면 취미가 있는 것도 중요해요. 노래 듣고 책 읽고 영화도 봐요. 아이유 팬이에요. 책은 최근에 을 읽었어요. 운동은 얼마 전까지 요가를 했어요. 요가 하면 잠도 깊이 들고 좋아요. 제가 원래 잠이 많거든요. 11시에 잠들면 아침 8시까지 잤는데, 도장에서 아침마다 운동장 세 바퀴씩 달리고 요가 하면서 아침 7시에 깨도 몸은 더 상쾌해요. 탁구도 좋아해요. 음, 실력은 랠리를 약간 하는 정도? 그런데 한국기원에 있던 탁구대가 얼마 전에 사라졌어요. 아쉬워요."

_좋아하는 기사는?

"언니들은 다 좋은 거 같아요. 고민도 잘 들어주고 챙겨주고. 바둑으로 존경하는 기사요? 루이나이웨이. 여자들이 바둑 둔다면 남자들보다 못 둔다고 하는데 이 분은 대등하게 둬서."

-기풍으로 좋아하는 기사는?

"유(창혁) 사범님"

-진짜로?

"히히"

_기보로 배웠으면 하는 기사는?

"이세돌 사범님. 기보를 보면 너무 어려워요. 맨날 싸우기만 하는데 이기니 뭔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알고 싶어요."

_프로기사로서 목표는?

"스무살 전에 삼성화재배 우승하고 싶어요."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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