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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 이대로 좋은가] (1) 기형적 스타의존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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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 이대로 좋은가] (1) 기형적 스타의존 시스템

입력
2011.08.2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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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슬의 난'으로까지 불린 KBS 드라마 '스파이 명월' 결방 사태가 미국으로 갔던 한예슬이 이틀 만에 귀국해 사과하고 촬영에 복귀함으로써 일단락됐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한예슬에 대해 "회당 3,000만원이란 어마어마한 돈을 받으면서 제멋대로 행동한 철부지"란 비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단 며칠 간의 촬영 거부가 방송 펑크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후진적 제작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예슬 사태의 원인과 배경,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개선 방안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 혹독한 촬영 스케줄 VS 톱스타의 절대 권력…

울고 싶은 배우 vs 현장의 최고 권력자

"용감하네요." 주연급 여배우 A는 한예슬의 행동에 공감했다. 그는 "나도 살인적인 촬영 스케줄과 감독과의 의견 차이로 몇 번이나 도망가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한예슬에게 공감하는 배우들이 많다. 촬영 분량이 많은 주연 배우들은 일단 촬영이 시작되면 24시간 올인 체제로 돌입해야 한다. 최근 종영한 '최고의 사랑'의 공효진은 "하루 1~2시간밖에 못 잤다. 너무 졸려서 촬영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마지막회분 편집하는 그 순간까지도 또 불러서 촬영하자고 할까 봐 무서웠다"고 방송에서 털어 놓았다. 한예슬이 밝혔듯 오전 5시에 촬영이 끝나고, 7시에 다시 촬영이 시작되는 건 흔한 일이다. 그 2시간의 휴식과 차량 이동 중 쪽잠으로 버텨야 하는 것.

반면 톱스타들은 현장에서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기도 한다. 여배우 B의 가채 사건은 유명한 일화. 사극에 출연한 B는 밤샘 촬영에 체력이 소진됐는데도 PD가 수차례 같은 장면을 반복해 찍자 결국 쓰고 있던 가채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항의했다. 결국 PD가 B에게 사과하고 달랜 끝에야 촬영이 재개됐다. 한 매니저는 "사소한 불화가 극단적인 감정 싸움으로 치닫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배우가 PD를 갈아치우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스타에 목 매고, 스타에 휘둘리는 드라마

주연 배우들이 처한 현실의 이 같은 양면은 '후진적' 혹은 '열악한'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지는 드라마 제작 환경의 문제점 중 하나가 지나친 스타 의존 구조에 있음을 보여준다.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스타급 배우 캐스팅에 목을 매고, 어렵게 '모신' 스타일수록 방송 비중이 높아져 촬영 스케줄은 스타 중심으로 짜일 수밖에 없다. 스타 배우들 역시 '생방송 촬영'의 피해자지만, 높은 몸값을 받았다는 이유로 감내할 것을 요구 받는다.

결방 사태를 부른 '스파이 명월'의 제작 차질도 한예슬이 촬영에 늦게 합류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제작 관계자들은 전했다. 방송 전 4~6회 분량을 찍어놓고 시작해도 일정에 쫓기게 마련인데, 한예슬이 다른 일정을 이유로 늦게 귀국해 첫 방송(7월 11일) 한 달 전인 6월 4일에야 부랴부랴 촬영을 시작했고 초반 싱가포르 촬영 일정을 소화하고 나니 3회부터는 사실상 '생방송 체제'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결국 한예슬이 촉박한 제작 일정의 피해자인 동시에 원인 제공자였다는 얘기다. 한 매니저는 "한예슬이 차라리 현장에서 쓰러졌으면 하루라도 좀 쉬고 박수라도 받았을 것"이라는 말로, 주연 배우들의 '링거 투혼'이 당연시되며 제작상의 모든 문제를 덮어버리는 현실을 꼬집었다.

제작 환경 열악할수록 치솟는 스타 몸값

주연 배우의 출연료는 보통 16부작 미니시리즈 한편에 평균 4억~6억원 수준이고, 고현정 이병헌 같은 특A급 스타의 경우 10억원을 훌쩍 넘는다. 여기에 드라마가 인기를 끌 경우 수십억원까지 치솟는 CF 수입을 덤으로 챙길 수 있다. 현빈은 '시크릿 가든'의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해병대에 입대한 뒤에도 CF를 통해 수시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내민다. 인기 관리와 수입만 따지자면 웬만한 영화 몇 편보다 드라마 한 편이 훨씬 실속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출연을 꺼리는 배우들이 적지 않다. 웬만큼 인지도를 쌓아 "이제는 '연기'를 하고 싶다"는 스타급일수록 더 그렇다. 쪽대본과 생방송 촬영이 난무하고, 캐릭터 설정 등을 놓고 연출자와 충분히 교감할 수 없는 제작 환경에 대한 불만 탓이다. 충무로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남자배우 C는 "돈이 궁하지만 않으면 드라마로 눈길을 돌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배우 D는 "눈 뜨면 그냥 카메라 앞에 서있고, 카메라가 꺼지면 바로 쓰러지는 식이니 제대로 연기할 여유는 없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스타급 배우들의 몸값이 갈수록 뛰고 촬영 과정은 물론 캐스팅 단계에서도 이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기제로 작동한다. 최근 화제 속에 종영한 한 드라마는 제작 직전 남녀 주인공이 바뀌는 소동을 빚었다. 애초에 섭외한 남자배우 E가 상대역 여배우를 탐탁지 않아 해 여배우를 교체했으나 결국 E도 유야무야 발을 뺀 것. 때문에 새 배우를 찾느라 법석을 떨었고, 새로 캐스팅된 배우 나이가 높아져 대본을 대폭 수정해야 했다.

과도한 스타 의존 구조는 스타 배우들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제작사 관계자는 "톱의 위치에 있는 배우들 중에 성질 피우지 않는 배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순재 등 중견 배우들이 더러 젊은 '벼락 스타' 배우들에게 촬영 지각 등에 대해 따끔한 쓴소리를 뱉어 화제가 되기도 하지만, 제작 시스템의 개선 없이 이들이 알아서 시쳇말로 "개념 탑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A급 스타만 잡으면 끝? 그런 시대 지났다

스타들이 드라마 제작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지만, 이들이 '흥행보증수표'는 아니다. 정지훈(비), 이나영 등 호화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았던 '도망자'는 흥행에 실패했다. 제작사는 출연료 미지급으로 소송까지 당했다. 최근 종영한 성유리의 '로맨스 타운'이나 송일국이 출연한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이민호 손예진 주연의 '개인의 취향' 등 스타들을 출연시키고도 시청률에 허덕인 드라마가 적지 않다. A급 스타만 잡으면 끝이던 시대는 갔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대본이나 연출에 투자하지 않고 손쉬운 스타시스템에만 의존한 게 드라마 질 하락을 불렀다는 평가다.

일본이나 미국 드라마를 쉽게 접하게 되면서 대중의 눈이 높아진 지 오래다. 이미지로 벼락 스타가 된 배우들로 편성을 따낼 수는 있지만 시청자를 끌어 모으고 드라마를 띄우는 게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최근 경향은 누가 출연하느냐 보다는 탄탄한 스토리와 연출력에 방점이 찍혀있다. 작가나 연출을 따져 보는 시청자도 늘고 있다. 드라마가 더 이상 스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작가의식과 연출력 그리고 수많은 스태프들의 협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 살인적인 노동에 처우는 단 몇푼, 스태프야말로 죽을맛

"스타 배우만 괴로운가. 스타가 2시간 자면 현장 감독과 스태프는 1시간 겨우 자거나 아예 못 잔다. 매니저도 없이 혼자 움직이는 보조 출연자들은 현장에서 쪼그려 잠깐 눈을 붙이고 10여 시간씩 대기한다."

드라마 현장의 가장 약자는 누구일까. 더 생각할 것 없이 현장 스태프다. 똑같이 밤새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지만 손에 쥐는 것도 별로 없다. 한예슬로 인해 배우들의 고달픈 현실이 주목을 받았지만, 더 열악환 환경에 놓인 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예슬이 촬영 거부 이틀째인 15일 오후 미국 행 비행기를 탔다는 얘기가 나오기까지 '스파이 명월'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현장에서 꼼짝없이 벌을 서야 했다. KBS의 한 PD는 "드라마가 잘되면 결국 배우가 가장 덕 보는 거다. 명성 얻고 CF 찍고 과실은 다 가져가는 거다. 작가도 몸값 올려서 다음 작품 기대할 수 있는 거고. PD들은 막말로 폼이라도 잡는다. 그런데 스태프들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다. 그는 "한예슬의 미국 행이 알려지기 직전 스태프들 일부에게 (촬영 현장에서)철수하라고 했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꼼짝하지 않았다더라. 100만원도 못 받는 그들이…"라며 분노했다.

과도한 스타 의존 시스템은 가뜩이나 열악한 스태프들의 처우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스파이 명월'처럼 배역이 곧 제목이 되는 드라마는 타이틀 롤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가 우기면 사정을 봐주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방송을 시작한 상황이면 결방을 피하는 것이 최대 목표가 되고, 결국 방법은 스태프들의 수면시간을 줄이거나 다른 배우들이 누려야 할 편의를 떼어 내는 길밖에 없다.

지난해 한 드라마의 타이틀 롤을 맡았던 여배우 F는 줄기차게 요구해 '주4일 촬영'을 쟁취했다. 한 제작진은 "모노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주인공이 계속 나와야 했는데, 이 요구를 들어주느라 스태프와 다른 연기자들은 몇 날 밤을 새고 풀가동해야 했다"고 전했다. 사전 제작 등 구조적인 해법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스타들이 누리는 편의가 스태프와 다른 배우들의 희생으로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박한 처우를 받는 스태프의 현실 개선이 더 시급하다"는 데 모두가 공감한다. 그러나 한예슬 사태처럼 스타만 부각되고 결국 그의 사과 한마디로 모든 문제가 덮여버리는 현실에서 스태프의 처우 개선은 진지한 논의조차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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