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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글로벌 금융위기 감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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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글로벌 금융위기 감상법

입력
2011.08.2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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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동동 팔월'이라 했다. 팔월은 동동 구를 정도로 분주한 가운데 지나간다는 의미다. 물론 농사일을 두고 이른 말이다. 하지만 현기증이 날 지경인 요즘 세계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바라보면 꼭 이를 두고 한 말 같다.

하루 건너 꼴로 각국 주식시장이 패닉에 빠져들다 보니 '블랙'이란 수식어가 요일마다 다 들어갔을 정도다. 시장의 과잉 반응이라지만 글로벌 경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디 하나 미더운 구석이 없다.

현실이 된 누란지세의 상황

소용돌이 진원지인 미국 경제는 하석상대(下石上臺)로 근근이 버텨가다 끝내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사실상 디폴트에 들어간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까지 휘정거리고 있는 유로존은 첩첩산중 상황이다. 잃어버린 20년에 쓰나미까지 덮친 일본은 설상가상의 형국이다. 그나마 사정이 제일 나아 보이는 중국 역시 체제 안정을 위한 고도 성장과 경제 안정을 위한 인플레이션 억제 사이에서 진퇴양난 국면에 직면해 있다. 민주화 운동의 거센 바람이 불고 있는 아랍 지역은 그야말로 폭풍전야요,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였던 한국 경제는 이제 오리무중이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짜 놀라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벌써부터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는 점이다. 누란지세(累卵之勢)의 상황이 현실화됐을 뿐이다. 2007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불거지기 한참 전부터 미국의 모기지 채권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지난 5일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지만, 이미 올해 초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끌어내렸고 지난달에는 부정적 관찰대상에 올려놓았었다. 남부 유럽 국가들의 만성적인 재정적자와 부동산 시장 거품 역시 오래 전부터 곪아왔던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위기는 사상누각에 벽돌탑 쌓기와 마찬가지였다. 흔들흔들 위태로운 탑 위에 벽돌을 올려놓고, 또 하나, 다시 또 하나를 얹을 때마다 탑은 점점 더 불안해진다. 결국 작은 벽돌 하나에 모든 게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탑을 무너뜨린 건 마지막 벽돌이 아니다. 결정적인 사건 하나가 아니라 한 층 한 층마다 더해진 불안정성이 위기의 원인이다.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탑의 꼭대기가 아니라 탑을 지탱한, 아니 지탱하지 못한 하부구조를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 정부가 그 동안 내놓았던 7,000억 달러 규모의 천문학적인 구제금융, 제로금리 수준으로의 금리 인하, 두 차례에 걸친 2조 달러가 넘는 양적완화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더 이상 재정지출을 늘릴 수 없는 미국은 유동성을 늘리기 위해 3차 양적완화 조치를 쓰겠지만, 이건 벽돌을 더 쌓는 것밖에 안 된다. 유로존 역시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국채를 많이 보유한 은행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프랑스마저 재정 위기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이다. 떠올릴 수 있는 한 가지 해법으로는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급격히 평가절상하는 동시에 경기 부양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중국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줄겠지만 경제 성장률은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고, 미국과 유로존은 수출 증가로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고, 실현된다 해도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일모도궁(日暮途窮)인 셈이다.

고성장과 풍요의 그늘 되돌아봐야

그러나 무엇이든 한 걸음 떨어져서 보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앨런 그린스펀에 앞서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지낸 폴 볼커는 의회의 재신임 청문회에서 실업률 상승과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서는 통화 팽창이 필요하다는 의원들의 요구에 "성장 속도가 빠르면 빠를수록 위험은 더 커지는 법"이라고 응수했다.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상당히 오래갈 게 분명하다. 높은 성장률과 물질적 풍요가 곧 성공이라는 패러다임을 버리지 않는 한 위기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태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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