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다면, 지하철 2호선의 문이 닫힐 때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면 어둠이 긴 불빛을 뱉어 낸다. 눈 밑이 서늘해졌다 밝아진다. 어딘가 당도할 거처를 찾는 시간. 철컥철컥 계기판도 없이 소리만 있는 시간. 나는 이 도시의 첩자였을까. 아니면 그냥 먼지였을까. 끝도 없고, 새로운 문만 자꾸 열리는 도시의 生. 잊혀진 얼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풍경은 서서히 물드는 것. 그리운 얼굴이 푸른 멍으로 잠시 물들다 노란 불꽃으로 사라진다. 나는 단조의 노래를 듣는다. 끊임없이 사각거리는 기계 소리, 단추 하나만 흐트러져도 완전히 망가지는 내 사랑은, 저 바퀴일까. 폭풍도 만나지 않은 채, 이런 리듬에 맞춰 춤추고 싶지 않다. 내 입술과 몸에도 푸른 멍자국이 핀다. 아무리 하품을 해도 피로하다.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모두 신성한 모험이었다는 거짓된 소문들. 내 속의 거대한 허무로 걸어 들어갈 자신이 없다. 지하철 2호선의 문이 활짝 열린다.
● 아름다운 시 한 구절을 외우고 다닌 적이 있습니다.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미국 방언협회는 ‘plutoed(명왕성 되다)’를 2006년의 새 단어로 선정했대요. ‘태양계로부터 소외당했다’는 뜻입니다. 그 해 명왕성은 태양계의 행성 지위에서 퇴출당했거든요. 명왕성이 태양 궤도를 돌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강제로 잊혀진 별이 되었을 뿐. 깊은 피로감에 휩싸여 우리는 이탈한 적도 없으나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하는 얼굴들을 떠올립니다.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고 싶던 별같이 환한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어요. 아직도 몸을 뚫지 못한 폭풍 같은 열망이 살갗에 멍을 남깁니다. 그 멍 때문에 지하철에서 내려 일상의 궤도를 향해 뛰어가지 못해요. 그냥 문이 닫혀주길 기다립니다. 오늘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 보고 싶습니다.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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